스페인에 본사를 둔 ‘인터불고그룹’의 권영호 회장은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제5차 세계한상대회에서 본보 기자와 만나 “내가 외국인이라면 한국에는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국의 기업 경영 환경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권 회장은 2001년부터 최근까지 국내에서 호텔 골프장 스포츠마케팅 분야 등에 3000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 사진 제공 재외동포재단
《국내 기업들이 비싼 임금, 강성 노조, 거미줄 규제에 시달려 줄줄이 해외로 나가고 있다. 이런 기업의 ‘탈(脫)한국’ 행렬 속에서 해외에서 번 돈을 한국에 대거 투자하는 동포 기업인이 있어 눈길을 끈다. 스페인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인터불고그룹 권영호(66) 회장은 2001년부터 최근까지 3000억 원 이상을 한국에 투자했다. 권 회장은 2001년 대구 유일의 특1급 호텔인 인터불고(Inter Bulgo·스페인어로 ‘정겨운 작은 마을’이라는 뜻) 호텔을 설립했다. 또 객실 280개를 갖춘 특1급 호텔과 27홀 규모의 골프장을 각각 대구와 경북 경산에 건설하고 있다.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2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우동 벡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제5차 세계한상(韓商)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권 회장을 만났다.》
모두들 떠나는데 스페인 영주권자인 권 회장은 왜 한국에 대규모 투자를 할까.
권 회장은 “어렵다고 모두들 나간다면 나라는 누가 지키겠느냐”며 “여건은 안 좋지만 조국이기 때문에 애국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지키는 마음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1990년에는 개인 재산을 털어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의 유택(遺宅)을 구입한 뒤 한국 정부에 기증했다.
한국에 투자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물어 보았다.
“말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치지만 행정지원은 기업하는 사람들의 의욕과 반대로 가고 있다. 내가 외국인이라면 이런 환경을 가진 한국에는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다.”
26세 때 대림수산 원양어선을 타고 라스팔마스 연안을 누비기 시작한 권 회장은 1978년 낡은 원양어선을 사들여 원양어업에 뛰어들었다.
어업 기지가 있던 아프리카 앙골라에서 발발한 내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민어와 조기, 가오리 등을 잡았다.
“낮에는 정부군이, 밤에는 반군이 점령하는 상황에서 총소리를 들으며 사업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포기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한테 없는 모험심으로 오늘을 이뤘다. 내 삶 자체가 모험이었다.”
권 회장의 뚝심과 모험심에 힘입어 인터불고그룹은 스페인(조선소, 골프장)과 네덜란드(동양식품 유통업), 앙골라(수산업), 가봉(수산업) 등에 100억 달러(약 9조5000억 원)대의 순자산을 보유한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인터불고그룹의 매출액에 대해서는 “기업하는 사람들에게 일급비밀”이라며 밝히지 않았다.
계열사인 IB스포츠가 스포츠 마케팅 회사로는 처음으로 지난달 26일 국내 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인터불고그룹 18개 계열사 중 증시에 상장된 회사는 IB스포츠가 유일하다.
이 회사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중계권과 아시아축구연맹이 주관하는 한국 대표팀 경기 중계권을 사들여 공중파 3사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방송과 중계는 별개의 산업으로 가고 있는 추세다. 공중파 방송사가 중계권을 독점해야 한다는 원칙은 없고, 중계 산업이 커지고 있어 우리가 먼저 진출한 것이다.”
2001년 청와대 만찬에 10년 된 엑셀 승용차를 타고 가 화제가 됐던 권 회장은 요즘도 한국에 머물 때는 1600cc SM3를 렌트해 직접 운전한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큰 차 타면 낭비야. 우리 같은 사람이 모범을 보여야지.”
승용차는 거대 기업 회장에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기부할 때는 글로벌 기업의 회장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해마다 5억 원을 기부한다. 3억 원은 고향인 경북 울진에 있는 장학재단에 주고, 1억 원은 아프리카나 유럽에 유학 중인 한국 학생들에게, 나머지 1억 원은 중국 지린(吉林)대에 장학금으로 준다.
1986년 만든 동영장학재단을 통해 80억 원의 장학금을 7000여 명에게 지급했다. 지린대에 장학금을 주는 건 그의 배에서 선원으로 일하고 있는 500여 명의 조선족 동포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그는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준 지역에 그 일부를 돌려주는 것”이라며 “내 분수에 맞게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