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숲으로 산책을 가려고
집을 막 나서는데
잠깐! 아내가 불러 세웠다.
부엌에서 나온 아내는
미나리를 씻다가 발견했다며
달팽이가 붙어 있는 미나리 순을 내밀었다.
산책 가는 길에
숲에 풀어 놓아주라고!
푸른 미나리 순에 붙어 꼼지락대는
아기 손톱보다 작은 달팽이를
모셔 들고
숲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붐비는 차도에는
차량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지만,
나는 달팽이를 나르는
생명의 수레.
길을 걷다가 내 손에 들린 달팽이를 보니
뿔 더듬이를 허공에 쳐들고
느릿느릿 춤을 추고 있었다.
(원, 세상에, 이렇게
느린 춤이 있다니!)
숲길로 접어들며 나는
보랏빛 향 그윽한 오동나무 숲 그늘에
가만히 달팽이를 놓아주었다.
달팽이는 여전히 춤을 추며
깊고 푸른 숲 그늘로
느릿느릿 기어 들어갔다.
- 시집 ‘수탉’(민음사) 중에서》
내 친구 달팽이들아, 우리가 사는 미나리꽝에서 저 건너 ‘보랏빛 향 그윽한 오동나무 숲 그늘’에 가고 싶거든 ‘사람 수레’를 이용하시게. 사금파리든 가시밭길이든 배를 끌며 한 치도 비약 없는 생을 걸어온 달팽이들아, 우리 걸음으론 평생 도달할 수 없는 그곳까지 반나절이면 족하다네. 산과 호수를 함부로 깎고 메우던 인간들이 우리의 탈것이 되기도 한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아직은 시운전 중인 저 ‘사람 수레’가 믿을만한 탈것이 되었으면. 그러나 달팽이들아, 너무 ‘속도’에 취하진 말고 느릿느릿 춤을 추며, 때론 미나리꽝을, 때론 오동나무 숲을, 우리들 아름다운 일생의 절경을 거닐기를!
- 시인 반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