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남해 한려수도에 늦여름의 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날이었다. 사흘간의 해양생물 채집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 안은 만선의 기쁨을 누리듯 들떠 있었다.
지난 10년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희귀한 ‘해면’을 바다 밑 동굴에서 찾아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마냥 즐거운 오후였다.
사람들의 대화에 끼어 보려고 자리를 털고 막 일어서던 참이었다. 갑자기 선실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며 힘차게 돌던 엔진이 멈췄다. 잠시 뒤 삽시간에 바닷물이 선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게다가 배가 파도에 밀려 좌우로 마구 요동치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일까? 혹시 배에 이상이라도….’ 선장이 급히 엔진이 있는 선실로 내려갔다. 잠시 뒤 덮개가 열리고 뜨겁게 달궈진 엔진 사이로 손길이 분주하게 오갔다. 모두 숨소리를 죽인 채 선실 안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엔진이 멈춘 원인이 밝혀졌다. 엔진 과열로 냉각수관이 녹아 터진 것.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도움을 청할만한 배는 도통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 많던 배들이 다 어디로 갔지?”
이럴 때야말로 침착해야 한다. 먼저 배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 사람들을 정확히 양쪽에 나누어 앉도록 했다.
선장은 별일 아니라는 듯 침착하게 구조 연락을 취한다. 그리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양수기를 켰다. 다행히 ‘윙’ 소리와 함께 물이 빠지기 시작했지만 구조선이 오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선장은 낡은 옷으로 터진 냉각수관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꺼진 엔진은 도통 말을 듣지 않는다. 한참을 엔진과 씨름하던 선장의 얼굴에 갑자기 자신감이 감돌았다. 순간 ‘텅텅텅’ 울리는 힘찬 엔진 소리.
“이제는 살았다!”
선장을 바라보는 모두의 얼굴엔 감사하는 마음이 역력했다. ‘이런 분들이 없다면, 과연 우리 같은 해양생물학자들이 먼바다까지 나가 안심하고 연구를 할 수 있을까.’
멀리 구조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배가 구조선에 이끌려 다시 바다를 가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싱싱한 회와 따끈한 생선 국물이 오른 저녁상을 입에 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강헌중
마린바이오 21사업단 해양천연물신약 연구단장·서울대 교수
hjkang@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