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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간첩수사 방해세력의 그림자

입력 | 2006-11-03 03:00:00


국가정보원장 경질을 일심회 간첩사건과 관련짓는 시각에 대해 청와대는 “실체가 없는 소모적 논란”이라고 반박했지만 논란을 자초한 쪽은 청와대다. 검찰이 일심회 사건을 기소한 후 국정원장을 교체했더라면 논란 자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국정원이 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대규모 간첩단 사건 수사를 시작하자마자 수사 의지가 강한 국정원장을 바꾸는 것이 정상인가.

김승규 원장이 공개적으로 “내부 승진이 돼서는 안 된다”며 김만복 1차장의 승진에 반대한 것도 심상치 않다. 그는 권부(權府) 핵심에 수사가 미치지 않도록 적당히 꿰매 버리는 ‘축소 봉합수사’가 될 것을 걱정했음이 틀림없다. 청와대가 김 원장의 충언에 아랑곳없이 김만복 카드를 고집한 걸 보면 이런 우려는 더 짙어진다.

이 정부의 대북정책을 총괄하다시피 해온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물러나고 ‘이 장관 사람’으로 분류되는 김만복 씨가 국정원장으로 내정된 것도 곡절이 있어 보인다. ‘햇볕정책’에 푹 빠진 이재정 씨가 신임 통일부 장관에 내정됐으니, 대북정책 기조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종석 씨가 물러나는 것은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어서인가.

저간의 사정을 깊숙이 알고 있을 김 원장이 입을 조금 열자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현직 원장이 재직 기간에 얻은 정보로 ‘자기주장’을 펴고 심지어 후임 원장 인사까지 언급한 것은 상식 밖”이라며 펄펄 뛴다. 수사 결과를 토대로 국정원장이 한 말을 ‘자기주장’이라고 폄훼하는 것은 국가 수사기관 책임자의 발언을 간첩 혐의자의 주장과 동렬에 놓는 상식 밖의 언행이다. 청와대가 나서기 어려워서 김 의장을 내세워 간첩 수사에 제동을 걸려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간첩사건 수사를 둘러싼 이런 묘한 기류가 바로 정권의 정체성(正體性)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 과거 독재시대에는 정권 안보를 위한 간첩사건 뻥튀기가 문제였지만, 지금은 축소 수사를 걱정해야 할 분위기다. 간첩의 손길이 청와대와 정치권 주사파(主思派) 386에까지 닿지 않았을지 불안하다. 의혹을 해소하는 길은 성역 없는 수사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