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숲을 나온 오소리/한스 팔라다 글·카탸 베어 그림·김라합 옮김/40쪽·1만1000원·마루벌(초등 전학년)
말 잘 듣는 아이가 착한 아이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참말이 거짓말을 이긴다? 정말 그럴까?
부모가 아이에게 일러주는 세상에 관한 진실에 삐딱하게 토를 다는 ‘나쁜’ 동화이다. 숲을 나와 마을로 들어선 오소리 때문에 사람들이 겪는 한바탕 소동을 통해 고집쟁이 착한 아이도 있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으며, 외면당하는 진실도 있기 마련이라는 당혹스러운 사실을 우회적으로 풀어놓았다.
숲 속에 사는 오소리는 여우에게 보금자리를 뺏긴 뒤 어슬렁대다 슈테판 씨네 목초지에서 덩치 큰 젖소와 마주친다. 호기심에 주둥이를 쑥 내미는 젖소. 젖소가 잡아먹으려는 줄로 착각한 조그만 오소리는 젖소의 축축한 콧잔등을 꽉 물어 버리고, 놀란 젖소는 오소리를 코에 매단 채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젖소의 울음소리에 사람들이 뛰쳐나오지만 젖소의 코를 놓아 주고 몰래 장작더미 틈새로 몸을 숨긴 오소리를 정확히 목격한 사람은 어린 페터뿐이다.
“주둥이는 뾰족하고 얼굴에 까만 줄무늬가 있고 몸은 거무스름한 동물이었어요.”
하지만 어리디 어린 페터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어른은 없다.
“눈이 이글거리는 게 늑대처럼 생긴 동물이었어.” “담비처럼 꼬리가 북실북실하고 몸이 긴 동물이었다니까.”
뒤이어 등장하는 페터의 누나 루시는 ‘옛날이야기 속에나 나올 것 같은 아주아주 착한 딸’이다. 루시는 해가 저물도록 오소리가 숨어 있는 장작더미 앞을 못 떠나는 페터를 다그친다. 루시의 ‘효심’이 페터의 호기심을 꺾는 대목이다.
“얼굴에 까만 줄무늬가 있는 동물은 세상에 없어. 페터 네가 다 지어낸 얘기지? 그만 집에 가자. 엄마를 기다리시게 해서야 되겠니?” “누나 같은 착한 아이가 되고 싶지는 않아!”
동화 속 배경은 우거진 숲 속과 젖소가 풀을 뜯는 목장이지만 젖소와 오소리의 생활은 고단하기만 하다. 목장은 ‘저 푸른 초원’이 아니다. 밤새 풀이 자랐다 해도 한입거리도 안 돼 젖소들은 그저 물만 들이켠다.
오소리는 오소리대로 투덜댄다. “난 이제껏 착하고 조용하게 살아왔어.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다니고, 집도 항상 깨끗하게 치웠어. 그런데도 어디서 떠돌이 여우가 나타나 나를 내 집에서 쫓아내다니.”
이런 나쁜 동화를 어떻게 읽히느냐고? 세상에는 반듯한 시선으로 예쁘게 쓰고 그린 동화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어린이 독서도 편식은 좋지 않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