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 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외곽의 한 생활보호소. 맹인 여성이 데리고 온 소녀의 모습과 행동은 기괴함 그 자체였다.
소녀는 몸을 웅크린 채 토끼처럼 움직였고 끊임없이 킁킁거렸다. 아무 곳에나 침을 뱉었으며 손톱으로 벽을 긁어댔다. 13세라고 했지만 할 줄 아는 말이라곤 “멈춰”, “그만 해” 정도였다.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야생에서 혼자 자란 아이 같았다.
사회복지사는 즉시 경찰에 알렸다. 맹인 여성은 소녀의 엄마였으며 남편이 딸을 학대하는 것을 견디다 못해 보호소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비극은 아버지에게서 시작됐다. 소녀의 아버지는 딸이 생후 20개월 됐을 때 의사에게서 “약간의 정신지체 증상을 보일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버지는 의사의 진단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보호’를 명분으로 딸을 침실에 감금했다. 낮에는 유아용 변기에, 밤에는 침낭 속에 묶어 뒀다. 다른 가족의 접근도 막았다. 소녀는 그렇게 10년 이상을 보내야 했다.
사람들은 이 소녀를 지니(Genie)라고 불렀다. ‘알라딘의 요술 램프’에 등장하는 요정 ‘지니’처럼 자유를 속박당했다는 뜻이었다. 아동 학대 혐의로 기소된 지니의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니는 아기처럼 칭얼거렸고 기저귀를 차고 있었어요.”
당시 이 소식을 보도한 CBS 방송국의 월터 크롱카이트 앵커는 1997년 3월 공영방송인 PBS의 ‘야생 아동의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렇게 회상했다.
학계에서는 ‘야생 아동’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는 언어학자, 의사 등으로 지니 연구팀을 꾸리고 연구비를 지원했다. 지니는 각종 실험을 받으며 ‘인간’으로 조금씩 바뀌어 갔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4년이 지나도 이렇다 할 학문적 성과가 나오지 않자 국립정신건강연구소는 연구비를 끊었다.
이후 지니는 양부모들의 집을 전전했다. 몇 곳에서는 정신적인 학대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연구팀의 한 관계자는 “입을 여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증언했다. 현재 지니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지니는 아동 학대의 극단적 사례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지니’들이 탈출이 불가능한 램프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지니에게 자유와 희망을 찾아줄 알라딘은 누구인가. 바로 어른들이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