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현대차가 국제사회에서 신망받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비판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삼성과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신분에 따른 도덕적 책무)적인 결단을 내려줬으면 좋겠다.”
권오승(사진) 공정거래위원장은 3일 성균관대에서 이 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정위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계열사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출자관계를 맺는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를 추진 중인 상황에서 대표적인 규제대상이 될 삼성그룹과 현대·기아차그룹에 이른바 ‘도덕적 결단’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권 위원장은 한발 더 나아가 “삼성그룹이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에버랜드 등 몇 가닥으로 정리해 장차 지주회사 체제로 가줬으면 좋겠는데 지금 당장은 삼성이 어려운 것 같다”고도 말했다. 특정 기업이 향후 갖춰야 할 ‘이상적’인 지배구조까지 제시한 셈이다.
이 같은 발언에 대해 경제 전문가와 재계 관계자들은 규제완화 논의를 도덕적 논란으로 전환해 기업과 재계를 압박하려는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홍익대 김종석(경제학) 교수는 “효율성이 중심이 돼야 할 규제완화의 문제를 ‘도덕적 문제’로 결부시키고 있다”면서 “기업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다는 세계적 논의의 흐름과 무관하게 특정 지배구조를 ‘선악(善惡)’의 문제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의 관계자는 “권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해당 기업에 큰 압력과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 관료가 특정 기업에 ‘착하게 살라’는 식으로 훈계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비판했다.
공정위가 순환출자 금지 도입을 추진하는 데 대해 정치권은 물론이고 정부 안에서도 강한 반발에 부닥치자 권 위원장이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국민 정서에 호소하고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정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권 위원장이 일을 지나치게 크게 벌여 놓고 수습하기 어려워지자 자충수를 두고 있다”며 “재경부와 산업자원부 등은 이 문제를 경제적 시각에서 풀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