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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쿵푸 허슬

입력 | 2006-11-07 03:01:00


《저우싱츠(周星馳·주성치)는 천재가 아닐까요? 그가 주연과 감독을 겸한 최신작 ‘쿵푸 허슬’을 보면 번뜩이는 그의 아이디어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저우싱츠의 영화는 참 이상야릇합니다. 잔혹한 영상에 ‘허걱 ’하고 놀라다 보면 어느새 배꼽을 잡고 웃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니까요. ‘식신’ ‘희극지왕’ ‘소림축구’…. 잔인하면서도 우스꽝스럽고 구슬프면서도 장난기 가득한 그의 영화는 얼핏 유치하고 과장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인생의 짙은 페이소스(pathos·비애)가 묻어난답니다. 자, 그럼 영화 ‘쿵푸 허슬’에는 저우싱츠의 어떤 세계관이 숨어 있는지 살펴볼까요.》

[1] 스토리 라인

법보다 주먹이 앞서던 1940년대 중국. 무자비하게 도끼를 휘두르는 폭력조직 ‘도끼파’의 위세에 사람들은 숨죽이며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별 볼 일 없는 하층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 ‘돼지촌’에 ‘싱’이란 건달 청년이 흘러듭니다. 싱은 돼지촌의 선량한 사람들을 겁줘서 자신의 위세를 과시함으로써 도끼파 보스의 눈에 들고 싶어 하죠. 그러나 계획은 빗나갑니다. 알고 보니, 돼지촌에는 쿵후의 절대 고수들이 여기저기 숨어 살고 있었던 것이죠.

이에 도끼파는 비파를 연주하는 떠돌이 형제 킬러를 동원해 돼지촌의 고수들을 하나 둘 제거하는 한편, 잔인한 쿵후 달인 ‘야수’를 이용해 돼지촌을 풍비박산 낼 음모를 꾸밉니다. 하지만 이게 웬일입니까? 잔인무도한 야수가 돼지촌을 막 접수하려는 순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최고 고수가 홀연히 나타나 전설의 무공 ‘여래신장’을 구사하며 야수를 무찌릅니다. 엄청난 장풍을 날린 이 고수는 누굴까요? 다름 아닌 싱이었습니다.

[2] 주제 및 키워드

이 영화의 주제가 ‘사회 정의의 실현’이라고 생각하나요? 만약 그렇다면, 그건 여러분의 지성과 감성이 무척 메말라 있다는 얘기일 겁니다. 물론 영화 후반에 선한 인물로 거듭나는 싱은 법과 질서를 무시하는 악당들을 혼내 줌으로써 폭력이 난무하는 어지러운 세상에 종지부를 찍고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교훈을 일깨워 줍니다. 하지만 이건 표면적인 모습일 뿐이죠. 우리는 딱딱하고 상투적인 인식의 틀을 깨고 싱의 마음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여래신장.’ 싱이 구사하는 이 절대무공에 해답이 숨어 있습니다. 여래신장이 영화 속에서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까요? 어린 시절 싱은 “너는 쿵후의 고수가 될 운명”이라는 걸인의 감언이설에 속아 여래신장 비법을 담았다는 그림책을 턱하니 삽니다. 하지만 그 책에 담긴 내용은 사기에 가까웠습니다. 꼬마 싱은 책을 보고 어설프게 여래신장을 구사했다가 오히려 동네 아이들에게 흠씬 두드려 맞고 ‘왕따’만 당하죠. 하지만 싱은 여래신장을 구사하는 절대 고수가 되고 맙니다. 그건 왜일까요?

싱은 자신의 운명을 끝까지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래신장을 구사하겠다’는 어렸을 적의 꿈을 한순간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죠.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도 있지요? 싱은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소중한 꿈을 지켜 가면서 스스로 절대 고수의 운명을 만들어 갔던 것이죠. 결국 ‘스스로 개척하는 운명’이야말로 이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인 겁니다.

[3] 더 깊게 생각하기

‘돼지촌’ 사람들의 일상이 소개되는 영화 초반부에는 포복절도할 장면이 나옵니다. 졸졸졸 흘러내리는 물줄기에 대고 이발소 청년이 순식간에 머리도 감고 몸도 씻고 이도 닦으면서 신기(神技)에 가까운 목욕 기술을 선보이는 장면이죠. 물론 가난한 돼지촌 사람들이 열악한 생활환경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우스꽝스럽게 보여 주는 대목이지만, 알고 보면 이 장면은 영화가 품고 있는 엄청난 철학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자, 돼지촌에 숨어 살던 쿵후의 고수들을 하나하나 눈여겨보세요. ‘십이로담퇴’라는 가공할 발차기 실력을 자랑하는 쿨리. 그는 평소 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해 무거운 쌀가마니를 제기 차듯 툭툭 차올렸던 등짐장수였습니다. 대나무 봉을 환상적으로 놀리는 ‘오랑팔괘권’의 주인공 도넛은 죽봉을 사용해 만두피를 부드럽게 빚어내던 분식집 주인이었죠. 또 초강력 주먹을 날리는 ‘홍가철선권’의 장본인 테일러는 양복점 주인이었습니다. 테일러는 세탁봉에 대롱대롱 매달린 금속 링을 떼어 내 손목에 팔찌처럼 두르고서는 무시무시한 철권을 휘두르죠.

무술 고수들에 얽힌 이런 기막힌 사연들에서 우리는 어떤 세계관 혹은 철학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맞습니다. 바로 ‘생활 속에 도(道)가 있다’는 철학이죠. 도는 저 구름 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등짐이든 양복점이든 분식점이든, 자신의 직업과 환경에 충실하면서 한 우물을 팔 때 도는 저절로 얻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영화는 말하고 있는 거죠.

엽기 부부라고밖에 볼 수 없는 판자촌 주인 아줌마와 그 남편을 보세요. 잔소리꾼인 아줌마는 커다란 목소리를 내뱉어 적들을 날려 보내는 전설의 무공 ‘사자후’의 고수였음이 드러나잖아요? 게다가 비실거리며 무능하기 짝이 없게만 보였던 남편은 상대방의 힘을 기가 막히게 이용해 요리조리 피하는 허허실실의 무술 ‘영춘권’의 대가였죠. 이 부부 역시 평소 자신의 생활과 습관을 도의 경지로 끌어올린 ‘생활 속 달인’들이었던 것입니다.

[4] 뒤집어 생각하기

‘쿵푸 허슬’에선 ‘외유내강(外柔內剛·겉으론 순하고 부드러우나 속으론 굳셈)’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겉으론 연약한 외모를 가진 돼지촌 주민들이지만, 알고 보면 막강한 내공의 소유자들임이 밝혀지니까요. 그래서 주민들을 얕잡아 보았던 싱은 큰 망신을 당하지 않습니까? 순박한 외모의 아낙네는 농사짓던 힘을 사용해 싱의 복부에 강펀치를 날립니다. 책벌레처럼 보이던 ‘안경잡이’에게도 싱은 혼쭐이 나죠.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와 앳된 얼굴의 어린아이도 알고 보니 ‘근육맨’이었습니다.

자, 영화 속 이런 설정들을 한번 휙 뒤집어 생각해 보세요. 영화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주민들의 모습을 통해 사실은 어떤 중요한 생각에 도달하고자 합니다. 그건 바로 ‘힘없는 민중이야말로 역사를 지탱하는 중심’이라는 주장이죠.

돼지촌에 오순도순 모여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비록 도끼파가 휘두르는 폭력의 위협 앞에 굴복하는 듯 보이지만, 그들끼리는 이상하리만큼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무법천지의 혼탁한 시류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은 채 역사의 큰 물줄기를 이끌어 가는 ‘보이지 않는 힘’의 주인공은 바로 평범한 서민들, 즉 이름 없는 민초들이란 사실을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