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 때 일제에 강제로 끌려가 연합군 포로의 감시원 역할을 했던 조선인들이 제대로 된 범죄사실 확인도 없이 일제 패전 후 전범으로 몰려 사형이나 중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이 승전국 문서로 확인됐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는 7일 태평양전쟁 당시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에 강제 동원돼 일본 패전 후 B, C급 전범으로 처벌된 조선인 포로감시원 15명에 대한 재판기록을 영국 국가기록원을 통해 입수했다고 밝혔다.
진상규명위 이세일 진상조사팀장은 "입수한 조선인 포로감시원 15명에 대한 '군 검찰관 기록'을 분석한 결과 명확한 증거 없이 유죄판결이 내려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46년 11월22일 사형당한 장○○(1917년 생) 씨의 재판기록에 따르면 당시 영국군 판사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포로수용소에서 포로감시원으로 활동한 장 씨가 연합군 포로를 때렸고 그 포로가 두 달 뒤 숨졌다는 사실과 함께 장 씨가 3군데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을 잔인하게 다뤘다는 점을 주된 선고이유로 밝히고 있다.
이 팀장은 "장 씨가 연합군 포로를 때린 것과 두 달 뒤 숨진 것 사이에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사형선고를 내린 것은 증거재판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며 "형사처벌을 하려면 구체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진상규명위는 미국 영국 호주 네덜란드 중국 등 전범재판이 이뤄진 국가에서 관련 기록을 입수해 조선인 B, C급 전범 148명 전원에 대해 진상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이 팀장은 "현재는 이들이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얘기만 있는데 과연 이들이 처벌받을 만한 행위를 했는지, 정당한 재판이 이뤄졌는지 등 객관적인 사실규명이 진상조사를 통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