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존 F 케네디 행정부 시절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컴퓨터 장관’으로 불렸다. 젖비린내 나는 40대 장관이었지만 별명에 걸맞게 치밀한 논리로 전장에서 잔뼈가 굵고 노회한 50, 60대 장군들을 밀어붙였다.
그의 이런 면모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두드러진다. 군부는 케네디 행정부의 위기 대처 방식을 소련에 대한 유화책이라 의심하고 임의로 전투준비태세(데프콘)를 높이면서 ‘뭘 모르는 철부지들’을 시험하려 했다.
소련 미사일 수송선이 봉쇄 라인을 넘자 해군 수뇌부는 교전수칙을 내세워 경고포격을 명령했다. 당장 핵전쟁까지 불러일으킬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상황실에서 봉쇄작전을 지휘하던 맥나마라는 “전쟁은 대통령의 전권”이라며 끝내 장군들의 기를 꺾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맥나마라는 문민통제 전통을 확립하고 최첨단 미군 전력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게임이론과 효율 분석, 컴퓨터 계산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을 동원해 국방 개혁을 단행했고 상호확증파괴(MAD) 논리에 바탕을 둔 억지 전략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이전부터 벼락출세의 신화 그 자체였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잠시 회계법인에서 일하다 하버드대에서 가장 젊고 연봉이 많은 조교수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엔 미 공군의 전신인 육군항공대에 대위로 입대해 전투기를 비롯한 군수물자 보급과 폭격기의 전략 효율 계산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맥나마라는 군 내 차세대 기수로 불리던 ‘10인방’ 중 한 사람이었다.
이들 10인방은 전쟁이 끝난 뒤 한꺼번에 옷을 벗고 포드자동차에 입사했다. 당시 포드자동차는 창업주의 손자인 헨리 포드 2세가 경영권을 막 승계한 상태였고 적자가 누적돼 위기 상황이었다.
전권을 위임받은 10인방은 곧바로 경영 수완을 발휘해 기업을 정상 궤도에 올려놨다. 이들의 눈부신 활약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 ‘멋진 녀석들’ 또는 ‘천재 아이들’로 번역할 수 있는 ‘휘즈 키즈(Whiz Kids)’였다.
10인방의 선두 주자는 단연 맥나마라였다. 입사 14년 만인 1960년 11월 9일 포드 2세에게서 경영권을 넘겨받아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포드 가문 밖에서 나온 최초의 포드자동차 총수였다.
그러나 맥나마라에게 최정상의 위치는 새로운 출발에 불과했다. 그는 취임 2개월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일면식도 없던 대통령 당선자 케네디에게서 입각을 권유 받고 포드자동차를 훌쩍 떠난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