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래밍으로 정교한 동작을 구현하는 게 휴머노이드 로봇 게임의 가장 큰 매력. 광운대 로봇 게임단 ‘로빗’의 멤버들이 로봇을 조종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휘이익∼ 휙∼.’
모터 소리와 함께 움직이는 ‘장난감’은 걷기, 앉기, 눕기,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키 30cm에 소재는 금속. 체구는 작지만 모양새는 1970년대 꼬마들의 친구였던 태권브이나 마징가Z를 연상케 한다.
TV 만화영화의 로봇 주인공처럼 레이저 광선이나 미사일은 쏘지 못한다. 날지도 못하고 변신할 줄도 모른다. 동작 역시 빠르고 유연하기보다는 딱딱하고 느리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런데도 장난감을 조종하는 ‘주인’의 반짝이는 눈 속엔 ‘바로 이거야’란 만족감이 가득하다.
로봇 청소기, 로봇 애완견, 로봇 가수 등 각종 로봇의 등장 속에서 최근 인간의 체형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어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국로봇게임협회에 따르면 국내에서 정기적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을 이용해 게임 등 취미활동을 즐기는 애호가는 1500여 명. 3, 4년 전부터 매년 10%가량 늘고 있다고 한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이것을 이용한 게임에 푹 빠져 있는 ‘얼리 어답터’들의 세계를 살펴봤다.
‘생명’을 불어넣는 매력
휴머노이드 로봇을 이용한 게임의 1차적인 매력은 직접 만든다는 것. 로봇 회사의 키트를 이용하든, 로봇을 직접 설계해 처음부터 끝까지 자체 제작을 하든 ‘사람을 닮은 로봇’을 만드는 과정에서 색다른 재미를 느낀다. 로봇 마니아가 되는 첫 단계다.
2년째 휴머노이드 로봇 게임에 빠져 있는 김영주(29·회사원) 씨는 “어려서부터 로봇 애니메이션을 즐겨 봤다”며 “영상으로만 만나는 로봇이 아니라 ‘분신’ 같은 로봇을 직접 갖고 싶어 로봇 제작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마니아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봇을 제작하는 데서 끝난다면 조립 애호가와 다를 게 없다.
마니아들은 로봇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입력하는 프로그래밍이야말로 또 다른 창조 활동이자 로봇 만들기의 숨은 매력이라고 설명한다.
광운대 로봇 게임단 ‘로빗’의 주장인 표윤석(2학년) 씨는 “정교한 동작이 가능하도록 프로그래밍하는 것은 휴머노이드 로봇 게임을 즐기기 위한 필수 작업”이라며 “로봇에 프로그래밍을 할 때는 기계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격투기에서 미션게임까지
격투기, 댄스, 미션게임….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의 종류는 다양하다.
게임은 걷기와 뛰기를 기본으로 프로그래밍된 각종 동작을 리모컨을 이용해 조종하는 방식으로 하게 된다.
격투기를 할 땐 펀칭, 앞차기, 옆차기, 일어나기 등을 프로그래밍한다. 춤을 출 때는 점프, 다리와 팔 돌리기, 앉기, 일어나기 등의 동작이 자주 쓰인다. 미션게임에서는 들기, 점프, 일어나기를 중심으로 프로그래밍이 이뤄진다.
조종자는 게임 상황에 따라 적절한 동작이 입력된 리모컨의 키를 누르면 된다.
게임의 승부는 격투기의 경우 제한시간 내에 상대편을 넘어뜨린 횟수로 결정된다. 댄스에서는 당연히 멋진 춤을 선보인 로봇이 승자다. 특히 다른 로봇들이 하지 못하는 특이한 춤 동작을 성공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미션게임은 장애물이 있는 공간에서 주어진 임무(물건 옮기기 등)를 얼마나 빠르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어떤 게임이든 얼마나 정교하게 로봇을 만들고 동작을 프로그래밍했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김진범(28·회사원) 씨는 “로봇 게임에서는 조종자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지가 잘 드러난다”며 “순간적인 조종 기술보다는 제작과 프로그래밍에 쏟은 정성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는 정직한 게임”이라고 강조했다.
로봇 조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한번 빠지게 되면 벗어나기 힘들죠. 하지만 아무나 로봇 마니아가 될 수 있는 시대는 아직 아닙니다.”
로봇 마니아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많은 이가 로봇에 흥미를 느낀다. 하지만 로봇은 연구 생산 게임 등 모든 면에서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기계 조립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어렵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로봇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프라모델, 무선조종(RC),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에 취미를 붙여 기계를 가까이 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로봇게임협회 전영수 회장은 “로봇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만으로 즐기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취미”라며 “과학을 탐구하는 자세로 꾸준하게 파고들 자신이 있을 때 조립과 조작이 비교적 쉬운 로봇 회사의 제작 키트를 구입하라”고 조언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국내에서 구입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제작 키트는?
로봇 자체가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상태여서 시중에 나와 있는 로봇 제작 키트도 다양하지 않다.
일반일들이 국내에서 쉽게 구입해 조립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키트로는 ‘로보노바’와 ‘바이올로이드’가 꼽힌다.
미니로봇(www.minirobot.co.kr)이 생산하는 로보노바는 십자드라이버만드으로도 분해와 조립을 할 수 있다.
걷기, 앉기, 달리기 등 기본 동작은 물론이고 물구나무서기와 텀블링까지 거뜬히 해 낸다.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 중 사용이 쉬운 편인 베이직(BASIC) 언어를 통해 로봇을 제어한다. 가격은 99만 원.
로보티즈(www.robotis.com)의 바이올로이드는 휴머노이드 로봇뿐 아니라 공룡, 강아지, 거미 형태의 로봇으로도 변신이 가능하다. 다양한 기능의 센서가 부착돼 있어 스스로 환경을 감지해 움직일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다.
행동제어와 3차원 모션 편집 프로그램이 기본으로 제공된다. 행동제어는 아이콘 선택으로 로봇의 움직임을 조종하는것. 3차원 모션 편집은 사용자가 마음대로 로봇의 관절을 구부려 자세를 만들어 내는 프로그램이다. 가격은 77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