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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홍권희]도심의 죽봉

입력 | 2006-11-10 03:05:00


8일 평화시위 관련 세미나장. 김태일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토론 중 “조직적으로 무장한 시위는 없고 폭력시위는 우발적”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방청석에서 이정화 ‘전의경부모모임’ 대표가 질문했다. “서울시내에 대나무 밭이 없잖아요. 그런데 미리 준비하지 않은 죽창이나 쇠파이프는 어디서 나오죠?” 김 총장은 즉답을 못한 채 난감해했다. 작년 말 서울 농민시위 때도 죽봉이 등장했는데 시위대는 “주변 공사장에서 주워 왔다”고 했다. 죽봉 10여 개짜리 꾸러미들이 시위 현장으로 반입되는 장면이 찍힌 동영상은 조작인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대는 서울에서 죽봉과 쇠파이프를 휘둘렀지만 홍콩과 미국 워싱턴의 원정시위 때는 어림없었다. 그 대신 피켓과 사물놀이 용품을 들었다. 시위 양상은 경찰, 정부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시민사회의 노력도 중요하다. 그제 세미나에서 벤 브라운 미국 텍사스대 교수는 “경찰만으로는 시위대의 불법 폭력행위를 통제하기 어렵다”면서 시민사회가 협조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구성한 ‘평화시위 민관위원회’가 출범한 지 열 달이 됐다. 당초 4월에 ‘평화시위 사회협약’을 내놓겠다고 했으나 계속 미뤄져 12월 체결로 목표를 수정했다고 한다. 정부와 사회·종교·노동단체 등이 서명하고 약속을 지키면 내년엔 선진 시위문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죽봉과 쇠파이프야말로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 요즘 열린우리당 사람들의 후회 시리즈가 유행이지만, 사회운동가들도 “죽봉 좋아하다가 국민에게 외면당했다”고 후회할 날이 오지 않을지.

▷그제 오후엔 전국빈민연합 시위대가 서울역에서 회현동을 거쳐 청계광장까지 행진을 했다. 이 바람에 30분간 차 안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회사원 김모 씨와 시위대 사이에 시비가 붙었다. 김 씨는 시위대 속으로 차를 몰아 4명을 친 뒤 다른 방향으로 가다가 시위대에 붙잡혀 폭행당했다. 잦은 도심 시위의 부산물이다. 도심 시위 스트레스를 참기 힘들어하는 시민이 늘어난다는 점을 시위 지도부가 가볍게 여겨도 될까.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