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 하고 ‘개 피’를 보는 연구원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 연구실에서 피를 뽑은 개는 족히 수천 마리는 될 게다.
개의 피는 정보의 보고(寶庫)다. 피에서 유전자를 추출해 분석하면 수천 년 전 그들의 조상이 이동해온 경로를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피를 뽑을 때 팔에 고무줄을 묶고 잘 보이는 혈관을 찾는다. 개도 마찬가지다. 앞다리에 고무줄을 묶고 혈관을 찾아 주사바늘을 찔러 넣는다.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수십 마리의 피를 뽑을 때면 갓 들어온 새내기 연구원들은 겁부터 먹기도 한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고약한 성품의 개들 때문이다. 그럴 땐 주인이 개에게 겁을 줘 꼼짝 못하게 하거나 붙들어 매놓고 피를 뽑아야 한다. 힘이 센 종으로 잘 알려진 로트바일러는 피를 뽑을라치면, 얼굴 표정도 변하지 않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다가 갑자기 연구원에게 달려든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처럼 말이다.
진돗개는 굉장히 예민하다. 주사바늘을 들이대면 심지어 주인까지 물기도 한다. 삽살개는 정반대다. 매우 순종적이라 연구원은 몰라도 주인이 피를 뽑을 땐 아파도 아무 소리 내지 않고 가만히 참고 있다.
이처럼 개들도 종마다 ‘아픔’에 대응하는 방식이 가지각색이다. 개들도 사람처럼 성격이 다양하고 심리상태도 복잡하다. 오랜 세월 대하다 보니 이제 눈빛만 힐끗 봐도 그 녀석의 성품이나 심리상태가 어떨지 감이 잡힌다. 개 정신분석학자로 나서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최근에는 진돗개와 삽살개의 피에서 유전자를 추출해 한반도 주변지역 토종 개들과 비교해봤다. 그 결과 진돗개, 삽살개가 몽골이나 시베리아 개들과 사촌지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수천 년 전 북방 기마민족들이 남하할 때 한반도에 들어온 개들이 바로 우리 토종으로 정착됐음을 입증하는 결과다.
또 겉모습이 확연히 다른 진돗개와 삽살개가 유전자 차원에서는 놀랍게도 형제지간이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개 피 속의 보이지 않는 유전자가 그들의 근본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홍 경북대 생명공학부 교수·산업자원부 지정 지역혁신시스템(RIS) 애견사업단장 jhha@k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