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유전적 진화가 느리다. 그런 탓에 신체에 큰 변화가 오는 데는 수백만 년이 걸린다.
신체의 진화는 이런 느린 리듬으로 계속될 것이다. 사랑니와 엄지발가락이 쓸모없는 것으로 판명된다 하더라도 이 두 가지가 신체에서 사라지는 날은 아주 먼 미래의 일일 것이다.
한편으로 식사와 생활방식의 변화는 신체를 훨씬 빠른 리듬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진화가 아니라 변화다. 인류는 덩치가 더 커지고, 키도 더 커지고 있다. 수명도 더 길어졌다.
신체의 변화는 섬유, 의류 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프랑스 의류 업계는 대규모 조사를 실시했다. 5∼70세 남녀 11만5000명의 신체를 측정한 것이다. 그 결과 지난 30년 동안 프랑스 남자의 키는 평균 5.5cm 자랐고 몸무게는 5.4kg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여자는 각각 2cm, 1.8kg 늘었다.
이런 신체 변화를 파악하는 것은 다른 분야에서도 필요하다. 이런 변화를 알아야 부엌의 조리대 높이를 조절할 수 있고 자동차 운전석의 공간도 새로 맞출 수 있다.
의학계 사람들은 이 통계 결과를 비만 문제를 분석하는 데 적용하기도 한다. 선사시대의 인류는 지방을 아무리 많이 섭취해도 문제가 없었다. 생존을 위해서 끊임없이 육체 활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인류는 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고 활동량이 적다. 반면에 지방이 과다한 음식은 천지에 깔렸다.
신체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면서 잘못된 관습을 낳기도 한다. 이제는 신체의 물리적 능력이 중요한 시대라기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미디어는 모든 사람에게 모델의 기준을 따르도록 부추긴다. 올 2월 독일에서는 ‘독일의 차기 톱 모델’이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물의를 일으켰다. 176cm, 52kg인 여성이 뚱뚱하다는 이유로 후보에서 탈락한 것이다.
당연히 이 프로그램은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의사와 심리학자들은 젊은 여성들에게 미칠 나쁜 영향에 대해 비판했다. 의사들이 더욱 걱정하는 이유는 모델과 일반 여성 사이의 간격은 결코 좁아질 수 없다는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 프랑스에서는 모델과 일반 여성의 몸무게가 8%가량 차이 났다. 오늘날 그 차이는 23%로 커졌다.
현대 사회에서 ‘외모’는 채용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 직장 생활에서 차별 요소가 되기도 한다. 비만한 사람은 고위직에 갈 수 있는 확률이 낮다는 통계도 있다. 게으르다는 인식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선입관은 비만에 대한 잘못된 대처를 낳기도 한다. 호르몬을 조절하고 억지로 식습관을 바꾸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아프리카 사람은 피부를 하얗게 하는 시술을 받으려 한다. 모두가 미국의 미디어 영향으로 서구의 미적 기준에 물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의 일부 광고대행사에서 취하고 있는 전략은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주로 40세 이상의 모델을 광고에 등장시킨다.
프랑스 여성의 평균 체형은 162cm의 키에 62.4kg의 몸무게다. 통통하고 작은 편이다. 이상적인 미적 기준과는 거리가 있다.
40세 이상의 모델을 내세우는 광고주들은 현실을 제대로 본 것이다. 50세 이상 인구는 갈수록 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구매력은 젊은 사람을 훨씬 능가한다.
신체의 자연스러운 진화와 변화를 거슬러 가며 획일적인 변화를 부추기는 무분별한 미디어들이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다.
제라르 뱅데 에뒤프랑스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