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잡아라/마크 카츠 지음·허진 옮김/382쪽·1만8000원·마티
“그건 연주가 아니다. 역병이다.” “마치 꼬리를 흔드는 개를 보는 것 같다.”
1911년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프리츠 크라이슬러(1875∼1962)가 현에 댄 왼손을 급격히 떠는 ‘비브라토(vibrato)’ 기법을 사용하자 클래식 비평가들이 쏟아냈던 비난이다. 바이올린 역사상 가장 뜨거운 논란을 일으킨 이 기법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바이올린 연주의 핵심이 됐다. 주목받지 못하던 비브라토가 20세기에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원인을 ‘녹음’에서 찾았다. 녹음기술이 막 개발된 시기, 확성기를 닮은 녹음장치는 기술의 한계 때문에 멀리서는 녹음이 불가능했다.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나팔에 부딪혀 연주를 망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한 채 최대한 가까이 앉아서 연주를 했다. 너무 가까이에서 녹음하자 바이올린 활의 찢어지는 마찰음까지 녹음되곤 했다. 이를 해결한 것이 비브라토다.
비브라토를 사용하면 음의 세기가 규칙적으로 커지고 작아지기 때문에 민감하지 않은 기계에 녹음하기 쉬웠고 잡음을 피하면서도 강렬한 음을 낼 수도 있었다. 또한 몸짓, 표정, 떨림 등 연주자의 존재감을 격동치는 바이올린 음색에 간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녹음된 소리는 실제 소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리얼리즘의 담론은 철저히 부정된다. 저자는 CD, LP, 테이프 등 매체에 담겨 있는 모든 소리는 조정된 것이라고 규정한다. 녹음기술에서 발생한 ‘조정된 소리’는 ‘포노그래프 효과(phonograph effect)’를 유발했다.
포노그래프 효과는 ‘녹음이 음악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말한다. 즉, 녹음이 음악의 예술성, 표현기법, 발상, 미학적 개념, 사회적 영향력까지 변화시켰다는 것. 하지만 독자들은 아직도 한물간 ‘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해 버린다’는 ‘기술결정론’에 함몰된 것이 아니냐고 지적할 만하다.
물론 저자는 기술과 기술을 이용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포노그래프 효과(녹음의 영향)를 결정한다며 자신의 주장이 ‘기술 결정론은 아님’을 강조한다. 하지만 녹음 기술을 기반으로 여러 현상을 설명하다 보니 기술결정론의 냄새를 지우기는 어렵다.
저자는 1980년대 인도 정부가 카세트 수입 제한을 완화해 가격이 싼 녹음매체를 들여놓자 소규모 레이블이 증가하고 음악의 제작 유통이 활발해져 인도 내 대중문화가 다양화된 현상, 1960년대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 카세트가 들어가자 전통 타악기 음악 ‘가믈란’이 획일화됐던 사례, 유럽 클래식 문화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축음기를 대대적으로 배포했던 20세기 초 미국 사회의 변화상 등을 다소 비약적이지만 포노그래프 효과로 설명한다.
하지만 녹음이 음악 생산자와 소비자도 바꿨다는 논리는 공감을 끌어 낸다. 미국 작곡가 로이 해리스는 레코드 러닝타임에 맞춰 플루트와 현악 4중주단의 곡을 4분 20여 초짜리로 만들어 제목마저 ‘4분 20초’로 명명했다.
마틴 윌리엄스 등 초기 블루스 가수들도 레코드 길이에 맞춰 곡의 서사구조를 만들었다. 음악을 혼자 듣는 것은 화장실 문을 열고 볼일을 보는 것과 같은 악취미로 취급받았으나 개인의 음악 감상은 축음기가 확산되면서 대중의 가장 큰 취미생활이 됐다.
기술적인 용어가 많아 다소 어렵지만 곳곳에 배치된 빌리 조엘, 에릭 클랩턴, 지미 핸드릭스 등 대중음악 뮤지션들, 그들과 관련된 녹음 이야기는 난해함을 덜어준다. 수많은 기술용어를 넘어 책을 읽고 나면 두 문장이 머릿속에 압축된다.
“위대한 발명은 예술의 형식 전체뿐 아니라 예술적 발상, 나아가 예술 개념 자체까지도 바꾸어 버릴 것이다.”(폴 발레리)
“기계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H H 슈트켄슈미트)
원제 ‘Capturing Sound: How technology has changed music’(2004년).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