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히말라야 가셔브롬 등반길의 오희준 씨. 그는 올 한 해에만 히말라야 8000m 이상의 4개 고봉을 연달아 올랐다. 이로써 그는 8000m 10개봉 등정에 성공했다.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5년 5월 북극점에서.
“얘가 사람이야?”
올해 들어서만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8850m)를 시작으로 히말라야 8000m 이상의 4개 고봉을 연달아 오른 오희준(36·노스페이스 알파인팀) 씨. 그에 대해서는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히말라야 8000m 14좌와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 및 지구 3극점 도달)을 이룬 박영석(43·골드윈코리아 이사) 씨도 혀를 내두른다.
○한라산 대피소 47kg 짐 배달하며 훈련비 벌기도
사정은 이랬다. 마나슬루(8163m)를 등정하고 지난달 30일 히말라야에서 귀국하자마자 오 씨는 박 씨에게 “이상하게 계속 어지럽고 배가 아프다”며 “병원에 한번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평소 산악계에서 ‘항우장사’로 소문난 오 씨가 병원에 가보겠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 진단 결과는 심각했다. 박 씨를 조용히 불러 세운 의사가 “위장, 십이지장은 물론 장까지의 소화기관이 성한 곳이 없다. 이 몸으로 어떻게 산에 올랐는지 놀라울 뿐이다”라며 곧바로 입원 지시를 내린 것.
3월부터 8개월 동안 히말라야 고산의 낮은 기압에서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영광의 상처였다. 하지만 오 씨는 보름쯤 입원해야 제 컨디션을 찾을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주일 만에 병상에서 일어났다.
오 씨가 산과 인연을 맺은 때는 1989년 제주대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히말라야와의 만남은 다소 늦어 산악 입문 10년 만인 1999년 제주산악연맹 원정대의 막내 대원으로 초오유(8201m)를 등정했다.
그 10년 동안 그는 한라산, 설악산, 지리산 등 국내 산들을 유랑하며 훈련에만 전념했다. 생활비와 훈련비는 몸으로 때웠다. 한라산 등산로인 영실에서 윗새오름(1700m), 성판악에서 진달래 대피소(1800m)까지 47kg이나 되는 음료 박스 6개씩을 등에 지고 올라 일당 7만 원을 받았다. “돈도 돈이지만 그때 체력 단련이 많이 된 것 같다”고 오 씨는 말한다.
○박영석 사단서 5개봉 등정… 5개봉은 독자 등정
그는 2000년부터 ‘박영석 사단’의 일원으로 2000년 7월 브로드피크(8047m)부터 2001년 7월 K2(8611m)까지 연속 4개 8000m급 고봉에 오르며 신예 산악인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박 씨와 함께 남북 극점 원정에도 성공해 에베레스트를 포함한 지구 3극점 도달 기록도 가지고 있다.
올해 5월 박영석 원정대의 부대장으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그는 곧바로 홀로 발길을 가셔브롬 베이스캠프로 돌려 7월 2봉(8035m)과 1봉(8068m)을 연달아 올랐고 10월 20일에는 마나슬루 정상에도 올랐다. 등정한 8000m 이상 10개봉 중 5개봉을 박영석 씨와 함께 올랐고 다른 5개봉은 따로 원정대를 꾸려 정상에 섰다.
그의 목표는 뭘까? “물론 계속 산에 오르는 것이죠. 최근 자주 혼자 원정길을 준비하다 보니까 고산 등반에도 영상 촬영, 행정 등 자신만의 주특기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내 주특기가 될 만한 것이 뭘까?’ 고민해봐야겠어요”라고 동문서답하며 씨∼익 웃었다.
전창 기자 j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