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세계산부인과학회(FIGO)의 최대 이슈는 자궁경부암과 예방 백신이었다. 이 학회는 3년마다 열리며, 이번에는 100여 개국 8000여 명의 산부인과 의사가 참가했다.
자궁경부암은 여성 암 가운데 두 번째로 흔한 암이다. 매년 약 24만 명이 이 암으로 숨진다. 국내에선 매년 5000여 명이 자궁경부암에 걸리며, 1300여 명이 이 암으로 숨을 거둔다. 이번 학회에선 자궁경부암을 주사(백신) 한 방으로 예방할 수 있는 방안들이 논의됐다.
▽자궁경부암이 사라진다?=자궁경부암은 모든 암 가운데 유일하게 원인이 밝혀진 암이다. 사람의 피부에 사마귀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로 알려진 인유두종 바이러스(HPV)가 자궁경부암의 원인이다. 이 바이러스의 활동을 억제해 자궁경부암을 예방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뤄져 왔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자궁경부암을 예방하는 백신을 상품화하고 있다. 이 백신을 처음 맞은 뒤 6개월 이내에 모두 3차례 접종하면 자궁경부암을 70∼80%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다국적 제약사인 MSD의 ‘가다실’은 전 세계 43개국에서 판매승인을 받았고 역시 다국적 제약사 GSK의 ‘서바릭스’도 조만간 미국과 유럽에서 판매승인을 받을 예정이다.
MSD 백신 부문 의료정책 책임자 그레그 실베스터 예방의학전문의는 “자궁경부암 때문에 두려움에 떨었던 많은 여성이 백신이 나오면서 심리적인 안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백신은 안전한가. 백신 접종 이후에는 자궁경부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검진도 필요 없을까.
실베스터 씨는 “5년에 걸친 임상 결과 백신의 예방 효과가 100% 입증됐다”면서 “수학적 계산으론 백신 효과가 30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국 케임브리지대 의대 병리학과 마거릿 스탠리 교수는 “백신 접종을 받은 여성이라도 통상적인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아야 한다”면서 “첫 성경험을 한 뒤부터 2, 3년에 한 번씩 검사를 받으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접종 나이=대부분 국가에서는 백신 접종 나이를 9∼26세로 잡고 있다. 이 시기에 백신 주사를 맞아야 면역력이 가장 잘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27세 이상 여성도 백신을 맞는 게 좋다.
강남성모병원 산부인과 박종섭 교수는 “40, 50대 여성도 백신 주사를 맞을 경우 면역력이 생길 수 있다”면서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검사한 뒤 감염이 안 된 여성에게 백신을 접종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다실의 경우 미국에서 3회 접종비는 40만원 정도. 백신 주사제로서는 매우 비싼 편이다. 이번 학회에서 미국 정부가 가다실을 11, 12세 여성에게 의무접종하고 9∼18세 저소득층 여성에게 무료 접종한다고 발표해 전문가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 백신은 언제쯤 국내에 도입될까. 늦어도 내년 말에는 시판이 가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현재 아시아 지역에서는 태국, 대만, 말레이시아, 홍콩 등에서 시판되고 있다.
▽남자에게도 좋다=최근 유럽을 비롯한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페루 등 29개국은 9∼15세 남자에게도 자궁경부암 백신을 놓을 수 있도록 판매를 승인했다.
HPV 감염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성기 사마귀, 항문암, 남성 성기암 등을 96%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호주 멜버른대 의대 로열여성병원 산부인과 수전 갈런드 교수는 “HPV에 감염된 남성은 여성에게도 전염시킬 수 있다”면서 “남성이 백신을 맞으면 여성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쿠알라룸푸르=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