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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민 칼럼]강정구와 론스타

입력 | 2006-11-14 02:59:00


나라가 어느 한구석 제대로 된 곳이 없다고들 한탄하지만 우리 사회 조직 가운데 그래도 가장 신뢰할 만한 데가 법조계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개인적으로 법조계 지인을 만나다 보면 이 분야에 생각이 바른 사람이 많다는 인상을 종종 받게 된다. 법조 3륜 중 검찰은 특히 참여정부 들어 정치권력으로부터 유난히 핍박을 많이 받은 탓에 ‘상대적 약자’에게 보내는 여론의 후원까지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론스타 수사를 놓고 벌어진 법원과의 갈등을 보면서 나는 검찰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9월 대법원장이 “(검사의) 수사기록을 던져 버려야 한다”고 거친 말을 했을 때 (그리고 자신의 가벼운 말에 대해 역시 가볍게 사과했을 때) 나는 그런 분위기가 지배하는 법원에 대해서는 마음을 닫기로 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명색이 3부 요인이라는 어른들이 이토록 재승박덕해야 하느냐고 실망하는 여론과 함께 말이다. 이번에 영장을 기각한 판사가 검찰의 반발에 “공부나 더 하라”고 일갈했을 때 이 법관도 자기 수양의 공부가 더 필요한 인물이구나 생각했다. 따라서 이번 사건으로 검찰에 실망했다고 해서 법원을 역성드는 것이 아님을 먼저 밝혀 둔다.

정치권엔 침묵… 법원엔 저항?

검찰의 수사내용을 문제 삼는 것도 아니다. 조직 전체가 이렇게 격앙하는 데는 나름대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짐작되고 그 배경도 대충은 이해한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에서 보인 검찰의 태도는 이 조직의 과거를 기억하는 많은 국민의 냉소를 받기에 충분하다. 검찰은 자구 하나 고치지 않고 영장을 계속 청구했지만 막상 대한민국이 그런 오기와 용기를 필요로 했을 때 검찰은 어떤 모습이었던가. 작년 10월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이 이 나라 사법 사상 처음으로 검찰에 지휘권을 행사해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하도록 했을 때의 얘기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흔들고, 자존심을 훼손한 그 처사에 대해 당시 검찰은 어떤 반응을 보였던가. 강 교수는 북한 노동당 산하 반민전이 홈페이지에서 내린 지침과 같이 ‘맥아더 동상을 당장 부수고, 미군을 철수시켜야 하며, 만경대 정신을 이어 받아 (적화) 통일하자’고 주장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런 중대한 안보사건의 핵심 인물을 장관이 불구속 수사하라고 지휘한 것은 이번 론스타 사건에서 법원이 경제사범 몇 명의 체포영장을 기각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심각한 사태였다.

법무부 장관의 고집에 검찰총장이 물러나는 ‘항거’를 보이긴 했지만 이번 법원에 대해서처럼 검찰이 원색적인 언어로 대놓고 저항하는 혈기왕성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검찰이 옥쇄할 각오가 없음을 상대에게 미리 알려주는 듯했다. 검찰은 이번에 영장이 기각되자 “법원이 남의 장사에 인분을 뿌렸다”고 말했지만 강정구 사건 때는 정치권력이 (인분 정도가 아니라) 독극물을 검찰에 들이부은 격이었는데도 반발하던 기세는 금방 수그러들었다.

그때는 상대가 실질적으로 검찰의 인사권을 쥔 정치권력이었고 지금은 법원이 상대라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당시 검찰은 절차상 지휘권을 거부하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에 승복한다고 했는데 그런 논리라면 법원이 영장을 기각한 것이야 말로 지극히 합법적이며, 그 판단은 판사의 고유 권한이니 당연히 승복해야 하는 것 아닌가(법원의 판단이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승복이 아름다울 때도 있고 반발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도 있다. 축구선수가 감독의 부당한 요구에는 순종하면서 심판 판정에만 격렬히 항의한다면 관중은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강정구와 론스타 두 사건에서 보인 검찰의 반응이 옳은지 뒤바뀐 것인지는 시간이 흐른 뒤 밝혀질 것이다.

불의에 맞서는 검찰로 거듭나야

그럼에도 나는 아직 검찰에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시절이 하 수상할수록 나라의 기강과 안보를 위해 검찰의 존재가 더더욱 강조되기 때문이다. 청사에 끌려온 피의자나 참고인에게 고압적이고, 영장을 기각한 법원에 완강한 것이 용감하고 강한 게 아니다. 진정한 용기는 정치권력의 부당한 압력이나 자유민주주의를 교란하는 불순 세력에 맞서 꿋꿋하게 사회를 지키는 것이다. 국민은 검찰이 그런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규민 大記者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