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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칼럼]벽돌 찍기 논술, 색깔 입히기 논술

입력 | 2006-11-14 21:09:00


컴퓨터 앞에 앉으면 모든 사람이 작가이고 기자가 되는 시대를 맞았다. 정보화시대에 논리적인 글쓰기는 실생활에서 점점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도 대학수학능력시험(SAT)에 논술을 포함시켰고 세계 각국이 논술 교육을 강화하는 추세다.

공교육은 논술 수요를 충족시킬 채비를 미처 갖추지 못한 것 같다. 전교조 교사들은 솔직하게 ‘준비 부족’이라고 말하는 대신에 논술시험이 본고사의 변형이라는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 공교육에 기댈 수 없는 학부모들이 사교육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창의력과 논리적 사고 능력을 길러 주는 사교육이라면 공교육을 보완하는 기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TV 끄고 신문 책 읽기

그러나 벼락치기 사교육을 통해 실력을 기르기가 가장 어려운 과목이 논술이다. 평소 좋은 글을 읽고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글을 많이 써 보는 게 중요하다. 텔레비전 시청 시간을 줄이고 신문 책 같은 활자매체와 친숙하게 지내는 것이 왕도(王道)다. 텔레비전은 논리적 사고를 방해한다. 미국 학생들은 학교에서 연평균 990시간 수업을 받는 데 비해 텔레비전 앞에서 평균 1023시간을 보낸다. 텔레비전 시청이 미래 세대의 교육을 망치고 있다는 걱정이 미국에서 나온다.

이장무 서울대 총장은 “강남 논술학원의 시험 문제를 다 검토해 제외하겠다”고 말했다. 이 총장의 말에는 벽돌을 찍듯이 틀에 박힌 답안을 암기시키는 논술 학습을 경계하는 의미도 담겨 있을 것이다. 필자도 5년 연속 동아일보 수습기자 채용시험의 논술 채점을 했다. 필자가 낮은 점수를 주고 싶은 유혹을 느꼈던 답안은 학원가 논술 답안을 연상시키는 틀에 찍은 벽돌 논술이다.

일부 대학의 본고사형 논술도 논리적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다. 이어령 씨가 “명색이 50년 동안 글쓰기를 했다는 나도 이런 방식의 글쓰기에는 자신이 없다”고 말한 것도 논술문제 출제 교수들이 한 번쯤 곱씹어 볼 대목이다.

요즘은 386 논술학원을 경계하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서울시내 대학 K 교수는 아들(중 1년)이 다니는 논술지도 학원에서 강만길 교수의 역사서를 교재로 쓰는 것을 알게 됐다. 강 교수의 사관(史觀)에 동의하지 않는 K 교수는 고민하다가 아들을 학원에 계속 다니게 하고 나중에 아들과 토론을 통해 학원의 교육 내용을 점검하기로 했다. K 교수는 “좋은 일자리를 찾지 못한 좌파 운동권 386들이 논술학원 강사로 대거 진출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합참의장을 지낸 예비역 육군대장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육군사관학교의 구술면접시험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거나 6·25전쟁을 통일전쟁이라고 답변하는 수험생들이 있었다. 성적이 좋아 합격권 안에 드는 일부 학생 중에서도 이런 답변이 나왔다. 좌편향 교과서나 학습서를 외워 구술하는 인상을 주었다. 이후 육사는 학생들의 편향적 인식을 바로잡는 교과목을 개설했다고 그 장군은 전했다.

‘강만길 리영희 신영복’편향

올해 한 언론사 입사시험의 논술문제 키워드는 ‘지식인’이었다. 답안지 중에는 리영희 씨와 신영복 씨를 한국 지식인의 표상으로 거론한 논술이 꽤 있었다. 좌파 지식계가 젊은이들의 의식세계에 미친 영향력의 뿌리를 유추해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리 씨는 ‘전환시대의 논리’ ‘8억인과의 대화’ 같은 저서를 통해 1980년대 대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한신대 윤평중 교수는 최근 리 씨를 평가하는 논문에서 ‘총체적 재앙이었던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과 북한의 참혹한 현실에 대해 우리를 미혹(迷惑)하는 글을 썼다’고 지적했다.

이어령 씨도 답안을 못 쓰겠다는 논술, 창의력 대신에 암기력을 배양하는 벽돌 찍기 논술, 오류로 판명된 교조적(敎條的) 논리를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색깔 논술…. 출제하는 쪽이나 가르치는 쪽 그리고 학부모는 논술의 혼돈(混沌)에 빠져 있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황호택 논설위원이 신동아에서 만난 '생각의 리더 10인'이 한 권의 책으로 묶어졌습니다.
가수 조용필, 탤런트 최진실, 대법원장 이용훈, 연극인 윤석화, 법무부 장관 천정배, 만화가 허영만, 한승헌 변호사, 작가 김주영, 신용하 백범학술원 원장,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

이 시대의 말과 생각
황호택 기자가 만난 생각의 리더 10인

지은이 : 황호택

가격 : 11,000 원

출간일 : 2006년 01월 01일

쪽수 : 359 쪽

판형 : 신국판

분야 : 교양

ISBN : 8970904476

비고 : 판매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