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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칼럼/양병태]내 PC로 슈퍼컴 만들기

입력 | 2006-11-15 03:00:00


서점에 들를 때마다 과학기술인으로서 서운함을 감추기 힘들다. 어느 서점을 가 보아도 과학기술서적 코너는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있다. 그나마 학생용 교육만화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21세기는 과학기술이 경제, 문화, 예술 등 사회 전반을 견인해 나가는 ‘과학기술 중심 사회’다. 얼마 전 ‘2006 광주 비엔날레’를 관람하다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한 작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예술적 표현 역시 과학과 동반성장하는 시대임을 실감했다. 국내 총수출액의 30%가량이 정보기술(IT) 제품일 정도로, 과학기술 경쟁력이 경제 발전의 원천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대인의 삶은 과학기술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점의 초라한 ‘과학기술서적 코너’처럼 과학기술에 관한 우리의 관심과 이해도는 극히 일천하다. 가장 큰 이유는 ‘어렵다, 나와는 관계없다, 과학자가 알아서 연구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단 3분 만에 내 PC를 슈퍼컴퓨터의 일부로 만들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면? 과학기술과의 거리감을 크게 좁힐 수 있지 않을까.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1990년대 말부터 PC의 유휴 자원을 모아 슈퍼컴퓨터처럼 사용하는 ‘@Home 프로젝트’가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우리가 문서작업, 인터넷, 게임을 하는 PC의 CPU 사용률은 최대 능력 대비 10% 안팎에 불과하다. 나머지 90% 정도는 그냥 놀리는 셈이다. @Home은 PC 이용자가 컴퓨터 전원을 켜고 다른 작업을 하는 동안 남는 자원을 모아 연구개발에 활용하는 프로젝트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Home은 미국의 과학재단이 추진한 SETI@Home이다. 지구 밖 지적생명체의 존재를 규명하기 위해, 다른 문명이 송출할지 모르는 주파수 신호를 찾는 작업이다. 1999년 시작돼 현재 600만 명의 PC 이용자가 참여하고 있다. 최고 성능이 70테라플롭스(1테라플롭스는 초당 1조 번 연산) 이상으로, 수천억 원대의 세계 최고 수준 슈퍼컴퓨터와 맞먹는다.

한국에서도 2002년 국가 차원의 @Home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초고속인터넷 가입률 세계 1위라는 높은 수준의 네트워킹 인프라를 기반으로 하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Korea@Home이다.

10월 현재 Korea@Home은 7만여 대의 PC 자원을 확보했고, 최고 성능 6.5테라플롭스에 이르는 컴퓨팅 파워를 만들어 냈다. 이렇게 확보한 슈퍼컴퓨팅 자원은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는 신약 후보 물질 탐색, 글로벌 리스크 관리, 한반도 집중호우 분석 등 첨단연구에 활용되는 중이다.

국내 인터넷 이용자 가운데 Korea@Home 회원은 0.2%에 그친다. Korea@Home 홈페이지(www.koreaathome.org)에 접속해 회원으로 가입하는 데 드는 시간은 2, 3분 정도다. 슈퍼컴퓨터 몇 대를 눈앞에서 놓쳐 버리는 셈이니 아쉬울 뿐이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 보면 수십 억, 수백 억 마리 개미의 뇌가 모여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을 만든다는 얘기가 나온다. 물론 픽션이다. 그러나 남는 PC 자원을 모아 슈퍼컴퓨터를 만드는 일은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다.

3분을 투자해, 국가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슈퍼컴퓨터의 일부가 되고, 삶을 윤택하게 할 첨단연구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면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지 않을까.

양병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