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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따 모스크바]법정 떠도는 차르의 망령

입력 | 2006-11-16 02:57:00

사회주의 붕괴 후 예카테린부르크 ‘피의 성당’에 세워진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가족 동상. 동아일보 자료 사진


‘볼셰비키 사회주의당 하수인이 저지른 형사 범죄인가, 아니면 사회주의 혁명정부의 정치 범죄인가.’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가 총살된 지 88년이 지났지만 그의 명예 회복을 둘러싼 소송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모스크바 주 트베르스키 지방법원은 1918년 러시아 내전 중 처형된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의 유족들이 낸 소송에서 ‘검찰이 니콜라이 2세의 복권을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14일 밝혔다. 이타르타스통신에 따르면 이날 법원은 “차르와 그 가족의 명예 회복에 대한 판결은 내리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니콜라이 2세의 처형에 대한 러시아 법원의 판단은 아직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올해 초 트베르스키 지방법원은 “니콜라이 2세는 정치적 탄압의 희생자가 아니다”라는 검찰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러시아 검찰은 지금까지 “차르의 명예 회복을 위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황제 유족 측이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불복하자 러시아 대법원은 올해 8월 재심리를 결정한 바 있다.

니콜라이 2세는 1917년 2월 혁명으로 퇴위했고 300여 년간 제정러시아를 통치해 온 로마노프 왕조도 그와 함께 끝났다. 차르와 그 가족은 적군(赤軍·혁명군)과 백군(白軍·반혁명군)의 내전이 격화되던 1918년 7월 17일 예카테린부르크의 상인 집에 감금됐다가 적군에게 한꺼번에 총살됐다.

러시아 검찰은 “황제의 처형은 적군이 사전에 계획한 살인이지만 정치적 동기가 있는 암살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증거 부족을 들어 차르 총살에 대한 법률적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볼셰비키 정권은 1991년 유골이 발굴될 때까지 처형과 관련된 문서를 폐기하거나 숨겼다. 총살 지시자와 경위에 대한 물증도 발견되지 않았다.

사회주의 붕괴 후 총살 현장 조사 결과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의 유전자(DNA)가 발견됐지만 현장에서 함께 숨졌다는 황태자 알렉세이와 막내 딸 아나스타시아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