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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대출 안된다니…계약 깨지면 누가 책임지나”

입력 | 2006-11-18 02:58:00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박태영(가명·39) 씨는 17일 오전 은행에 아파트를 담보로 8000만 원 대출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은행 측이 “신규 대출을 취급하지 말라는 본점 지시가 있었다”며 대출신청서를 접수하지 않은 것.

금융감독원이 최근 은행에 주택담보대출 경쟁 자제를 요청하면서 은행돈 빌리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은행이 매달 늘어나는 대출 총액을 제한하면 투기지역뿐 아니라 비투기지역 실수요자도 자금조달이 어렵게 된다.

○ “매매계약 등 특별한 대출만 승인”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은행. 기존 주택담보대출 규정이 적용되는 마지막 날인 탓인지 평소보다 많은 고객이 대출을 받기 위해 창구 앞에 줄지어 섰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창구 직원이 고객들에게 “대출 승인이 날지, 안 날지 확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객들은 “잔금 지급이 다음 주인데 대출을 안 해줘 계약이 깨지면 누가 책임지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은행 대출담당자는 “본점에서 ‘매매계약을 한 경우 등 부득이한 대출에 대해서만 승인 신청할 것’을 지시했다”고 귀띔했다.

○ 대출 자제 권고 배경

금융감독 당국이 은행에 대출 자제를 권고한 것은 최근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이 늘어나는 속도가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한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달 들어 15일까지 17개 국내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2조5224억 원으로 10월 증가액 2조7574억 원에 육박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런 속도라면 11월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5조 원으로 올해 최고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대출 총량 규제는 ‘11·15 부동산 대책’ 이후에도 시장 불안이 계속될 때 선택할 수 있는 후속 대책 중 하나. 현행법상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대출총량 규제 결정 권한이 있지만 금융시장 전체를 경색시킬 수 있는 파급력 때문에 실시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도 이런 점을 감안해 창구 지도 형태의 간접적인 규제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 단기 효과 있을 듯…장기 효과는 미지수

금융감독 당국의 대출 자제 권고 및 월별 대출 한도 설정으로 국민은행은 투기과열지역에선 아파트 매매계약이 체결됐거나 잔금 일정이 긴박한 경우에 한해 대출해 주기로 했다.

신한은행은 모든 대출을 본점에서 승인할 예정이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정상영업을 하되 추이를 지켜본 뒤 세부방침을 정하기로 했다.

이번 규제로 집값 상승세가 다소 주춤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주택담보대출로 집을 사려는 수요를 직접적으로 억제할 수 있어 효과가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당장 규제를 하면 주택대출이 일시 감소하겠지만 규제가 풀리면 억제됐던 대출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는 ‘풍선 효과’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출을 규제해도 자금동원력이 뛰어난 투기 세력들은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실수요자가 더 큰 피해를 보는 부작용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