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명필 김생(金生·711∼791)의 글씨로 전해져 왔으나 진품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하던 서예작품 한 점이 신라시대에 제작된 종이에 쓰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는 17일 “집안의 가보로 소장하고 있는 6줄짜리 사경(寫經)의 종이 일부를 서울대 기초과학교육연구공동기기원에 보내 탄소연대측정을 의뢰한 결과 789년±60년으로 김생의 생몰연도와 비슷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감정서를 공개했다. 종이 분석을 맡은 윤민용 박사는 “종이의 섬유질 세포막에 남아 있는 탄소연대를 추정한 결과 8세기 당시의 종이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정 교수에 따르면 이 작품은 조선 영조 때 경북 청도군수로 있던 정 교수의 9대조 정창유(鄭昌兪) 공이 관내 한 사찰의 화재사건 때 파손된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것을 보관해 온 것이라고 한다. ‘나무수일절의법운불(南無隨一切意法雲佛)’ 등 여섯 부처의 이름을 세로 6줄에 적은 이 종이의 오른쪽 귀퉁이에는 후대의 글씨로 보이는 ‘김생 육행(金生 六行·김생이 쓴 6줄이란 뜻)’이라는 작은 글씨가 적혀 있다.
이 작품의 존재는 1986년 본보 보도(5월 24일자 10면)를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지금까지 김생의 글씨로 알려진 것들은 모두 금석문인 데다 그나마 행서와 초서여서 해서로 쓰인 이 글씨와 비교할 만한 전거가 없어 전문가들도 진품인지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정 교수는 “당시는 어려웠지만 이제는 종이의 연대 측정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일부를 잘라 연대 측정을 의뢰했다”며 “이번에 사료의 희귀성만이라도 확인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편 25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한국서지학회 주최로 이 사경을 분석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서체 분석을 맡은 이완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김생의 글씨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서체로 봤을 때 8세기 서체만의 특징이 분명히 나타난다”고 말했다.
종이 분석을 맡은 박지선 용인대 교수는 “8세기 이전 종이는 무구정광다라니경(국보 제126호·704∼751년 제작설과 고려시대 제작설이 엇갈림)과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국보 제196호·754년) 정도가 대표적인데 이번 사경의 종이제작기법은 이들 종이와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연구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