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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옷 같지 않은…” 공무원들 마음이 떠난다

입력 | 2006-11-18 02:58:00


《“언제부터 저 옷이 이렇게 갑갑하고 어색해졌을까….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확신에 밤새워 만든 정책을 들고 국회에 들어갈 때, 한국의 위상을 높이려고 해외에 나가 목소리를 높일 때 언제나 같이했던 저 짙은 색 양복. 앞으로 저 옷을 얼마나 더 입게 될까.” 비판도 받았지만 한국의 고도성장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일해 온 한국의 공무원들. 요즘 이들의 어깨에 힘이 많이 빠졌다. ‘위’에서 정해 내려온 설익은 정책 방향에 맞춰 내용만 채워 넣는 ‘정책 기술자’로 전락했다는 부끄러움이 그들의 가슴을 짓누른다. 이들이 가슴속에 담아둔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2006년 11월 한국의 공직사회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공무원 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국가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엘리트 집단으로서의 자부심은 찾기 힘들다. 공직생활의 경험과 철학은 뒷전에 꾹꾹 눌러놓고 실권을 가진 정권 내 아마추어들의 ‘설익은 정책 실험’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했다가 욕만 먹고 있는 ‘정책 기술자’라는 자괴감이 적지 않다. 정권의 지지도 급락과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예정된 해체까지 겹쳐 관가(官街)에는 정권 말기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 분위기가 팽배하다.

50대 국장 “왜 이리 흔드는지 피곤해”

청와대와 정치권을 장악한 ‘386 그룹’은 공무원들에게 ‘혁신(革新)’을 강요했다. 이렇게 도입한 각종 개혁 제도는 기존의 조직 질서를 뒤흔들었지만 잘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하다. 공직사회를 향한 ‘철밥통’이라는 비판도 부담스럽고 노후 역시 걱정이다.

본보 취재팀은 흔들리는 공직사회의 현주소를 알아보기 위해 정부 각 부처 공무원 40여 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취재팀이 이번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것은 2006년 한국의 공직사회를 덮고 있는 ‘3불(不)’의 위기였다. 정책 실행의 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불만(不滿),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하지 못하는 부동(不動), 미래에 대한 불안(不安)이다.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고시 출신 50대 국장, 40대 과장, 30대 사무관의 가상 좌담을 마련했다.

▽국장=공직생활 25년이 됐지만 요즘처럼 공무원들이 흔들리는 걸 본 적이 없어. (쓴웃음을 지으며) 이 정부가 공무원 사회를 개혁한다면서 ‘창조적 파괴’를 시도한 거라면 최소한 ‘파괴’ 한 가지는 확실히 성공한 것 같아.

40대 과장 “소신? 튀면 나만 손해”

▽과장=부동산 정책 실패를 보세요. 청와대 ‘코드’에 맞춰 정책을 만들었던 실무진도 정책 실패의 책임을 피할 수 없잖아요. 선배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복지부동(伏地不動)만이 살길’이라고 하던 말이 요즘처럼 뼈저리게 느껴진 적이 없어요.

▽사무관=요즘 유학을 준비하는 사무관이 한둘이 아니에요. 외국 변호사가 돼서 국내 법률회사(로펌)에 들어가는 게 꿈이죠. 부끄러운 얘기지만 관료로서 경력과 철학을 쌓아 멋지게 정책을 펼쳐 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무관은 많이 줄었어요.

▽국장=이런 얘기 들어 봤어? 골프 티샷을 할 때 볼에 훅이 걸려 ‘왼쪽’으로 날아가다가 낙하지점은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정조준하는 사람이 ‘최고수’라는 거지. 정권의 컬러가 컬러인 만큼 그들의 눈에 띄는 곳에서는 ‘좌향좌’를 하더라도 역사의 평가와 국익을 생각하면 결국 공은 중앙에 떨어져야 한다는 거야.

▽과장=올해 국정감사를 끝으로 이 정부의 레임덕은 시작됐다고 봐요. 현 정부가 만든 정책이 미뤄지길 기다리는 공무원이 많아질 겁니다. 사실 다음 정부 때도 지금의 정책 기조가 이어질지 누가 장담하겠어요. 괜히 지금 잘나간다는 이미지가 있어 봐야 도움 될 것도 없고요.

30대 사무관 “살길 찾아 유학이나…”

▽사무관=시장을 무시하는 태도가 청와대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정책을 만들 때는 부작용도 생각해야 하는데 그냥 밀어붙이기만 하니…. 걱정이 되지만 어디 대놓고 의견을 말할 분위기인가요?

▽국장=혁신이네 뭐네 세게 ‘드라이브’를 걸다 보니 피로가 누적된 것 같기도 해. 고위 공무원단이니, 개방형 직위니 하는 것들이 요즘 공직사회를 얼마나 흔들고 있어? 현 정권에서 실무진 의견을 안 묻고 청와대에서 장관들끼리 토론 몇 번 하고 밀어붙인 게 너무 많아.

▽사무관=조직 충성도가 많이 떨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내 ‘보스’가 나를 챙겨 주지 않을 것이란 걱정 때문에 각자 자기 살길을 찾는 거죠. 옛날엔 상사 잘 모시고 우직하게 일만 잘하면 승진하고 해외연수도 가고 좋았다던데….

▽국장=요즘 ‘존경할 만한 공무원상’이란 게 사라졌어. 세금 축내는 무능한 조직, 개혁의 대상으로만 남았지. 부패한 관료가 없었다고는 말 못해. 하지만 공무원만큼 국가를 걱정하고, 정책 경험을 가진 조직이 또 어디 있어? 모처럼 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으니 그래도 좀 후련하네. 자, 이제 다시 돌아가 일들 하지.

▽경제부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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