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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재벌 점호’와 ‘벌주기 세무조사’ 그만 해야

입력 | 2006-11-18 02:59:00


15일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여수세계박람회 유치 추진상황 보고회’에 초청된 경제단체장과 대기업 최고경영자 가운데 다수가 불참해 대통령 레임덕(권력누수)의 증거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재벌그룹 회장들이 점호(點呼)를 받듯이 일제히 청와대 회의에 불려 들어가는 것은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이다.

전두환 정부 때 국제그룹이 전 대통령의 아호가 붙은 일해(日海)재단 모금에 적극 호응하지 않고 양정모 회장이 청와대의 재계 회동에 지각한 뒤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고 그룹의 공중분해를 맞았다는 이야기는 한국 기업사의 전설로 남아 있다. 진정한 민주시대라면 청와대의 재벌 회장 점호는 사라져야 할 관행이다.

대통령의 외국 순방 때도 재벌 회장들이 승합차에 끼어 타고 대통령 탑승차의 뒤를 따라다니는 모습이 여러 차례 희화화(戱畵化)된 적이 있다. 대통령의 심기(心氣)가 투영되는 세무조사를 비롯해 기업인들이 대통령 앞에서 떨 수밖에 없는 한국적인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과 기업인들이 함께 회의를 해야 할 일이 있더라도 모든 재벌 회장이 다른 일정을 다 취소하기보다는 사정에 따라 다른 경영진이 대신 갈 수도 있어야 한다.

세무조사가 ‘기업 길들이기’용으로 악용돼서도 안 된다. 국세청은 아파트 고(高)분양가 논란을 빚은 4개 건설업체에 대해 예고 없이 전격적으로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국세청은 분양가 통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일제 세무조사는 아니라고 해명하지만 이 말을 곧이듣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아파트 분양을 앞둔 다른 건설회사들도 국세청 눈치를 보며 분양가 인하 방안을 놓고 고민 중이라고 한다.

전군표 국세청장은 7월 인사청문회에서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가 정치적 의도로 실시됐다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전임자인 이주성 청장이 6월에 갑자기 사퇴한 것도 언론사 세무조사를 하라는 정부 실세(實勢)들과의 갈등 때문이라는 설(說)이 있었다. 세무조사가 특정 정책을 강행하기 위한 수단이나 ‘겁주기’용으로 쓰여서는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확립된 국가라고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