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도(KTX) 서울역 역사 4층의 중식당 ‘T원’이 여행객 상대의 전통적인 식당 개념에서 벗어나 비즈니스 미팅이나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손님들 뒤로 서울역 간판이 보인다. 원대연 기자
인천국제공항 4층 식당가는 인천공항고속도로를 드라이브한 뒤 식사를 즐기는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파노라마 라운지’에서 미니 파티를 열고 있는 도형숙 씨 가족. 인천=이호갑 기자
“어디라고요?”
회사원 이진만(39) 씨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거래처 임원이 서울역을 비즈니스 미팅 장소로 정한 것이다.
돌아온 대답은 똑같았다. “예, 서울역 T원(園)입니다.”
이 씨는 짐작했다. 아마도 상대방은 미팅을 마치면 고속철도(KTX)를 타고 지방에 출장 갈 것이라고. 하지만 약속한 날, 이 씨는 임원의 설명을 듣고 자신의 추측이 틀렸음을 알았다.
“찾기 쉽고 분위기도 좋아 약속 장소로 정했습니다.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고…. 서울역광장을 보면서 식사를 하는 색다른 즐거움이 있습니다.”
KTX 역사, 인천국제공항 등 첨단 스테이션(station·역사) 건물에 세련된 인테리어로 무장한 고급 레스토랑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풍속도가 생겨나고 있다.
기차, 버스, 비행기를 타기 전이나 내린 뒤 서둘러 허기를 달랬던 전통적인 개념의 식당에서 벗어나 데이트와 가족 파티, 비즈니스 장소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 여행 스케줄이 없는데도 레스토랑 이용을 목적으로 기차역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 드라이브와 활주로 패키지
“이모 이모부, 무사귀국을 축하해요.”
1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4층 ‘파노라마 라운지’에서는 미니 케이크를 놓고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도형숙(37) 씨가 딸 이지은(11), 조카 권나현(11)과 함께 11년 만에 일시 귀국한 언니 부부를 환영하는 모임을 연 것이다.
도 씨는 “교통이 복잡하고 사람들로 붐비는 서울시내 식당보다는 한적한 공항 레스토랑이 축하 분위기를 내기에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몇 달 전 저녁 무렵 노을이 질 때 인천공항고속도로에서 남편과 드라이브를 즐긴 뒤 오붓하게 식사했던 즐거운 기억도 한몫했다.
“오래 머물러도 눈치가 보이지 않아 좋아요. 활주로와 비행기를 감상하면서 식사하는 재미도 이곳만의 매력입니다.” 도 씨의 공항 레스토랑 예찬론이다.
파노라마 라운지는 탁 트인 투명 통유리로 단장된 라운지에서 활주로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신세대 연인의 데이트 코스로 괜찮다. 또 어린 자녀들이 국제공항을 체험할 수 있고 함께 식사도 즐길 수 있는 ‘가족 나들이’ 코스로도 좋다. 전통미와 현대미가 조화된 한식당 ‘셔블’, 공항 내에서 유일하게 중국요리를 맛볼 수 있는 ‘파빌리온’, 일품요리가 다양한 일식당 ‘치도리’도 가볼 만하다.
○ 조용한 분위기에서 사업을 논하다
KTX 역사 내 4층의 캐주얼 중식당 ‘T원’은 비즈니스 미팅 장소로 적합하다. 특히 서울을 찾은 지방 거래처의 고객과 만날 때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다른 중식당에서 볼 수 없는 메뉴가 많다. 찹쌀 토마토소스로 맛을 낸 탕수육, 새우 상추쌈, 쓰촨(四川)식 연두부 전골, 알로에 누룽지탕…. 여기에 다양한 와인, 마오타이 소흥주 등의 중국술, 중국 맥주 등을 곁들일 수 있어 친근한 분위기의 미팅 장소로 어울린다. 가격도 2만 원대로 부담 없다.
실내는 철제 톱니바퀴와 중국 현지에서 가져온 각종 소품으로 장식돼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 친구 미팅이나 동료 회식 장소로
KTX 호남선 출발지인 용산역 아이파크 몰의 ‘하루에’는 친구 만나기에 적당한 카페다. 청담동, 한남동, 서초동에 이은 4호점이다.
위치만 용산역이지 분위기나 인테리어, 메뉴는 강남의 하루에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가격은 강남점보다 저렴하다. 용산역사 내 CGV에서 영화를 본 뒤, 또는 관람 전 기다리는 시간에 이용해볼 만하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센트럴시티 내 퓨전 레스토랑 ‘뮤란’은 술과 식사를 함께 즐길 수 있어 동창회나 직장동료 회식 장소로 인기다. 일본식 긴 소시지에 곁들여 저온 창고에서 3일간 숙성시킨 뮤란 맥주를 한잔 들이켜면 ‘캬∼’ 소리가 절로 난다. 불이 붙은 채로 접시에 담겨 나오는 까만 폭탄 김밥은 먹을 때 불이 저절로 꺼져 심지를 빼고 먹는 재미가 있다. 김에 싸인 김치 참치 볶음밥은 매콤하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