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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집-맛의 비밀]종로 ‘큰 기와집’의 간장게장

입력 | 2006-11-18 03:01:00

원대연 기자


《맛으로 소문난 집들이 있습니다. 식도락가들은 값이 좀 비싸도 몇 시간씩 줄을 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어렵사리 비좁은 자리에 앉으면 밖에 줄지어선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수저를 바쁘게 놀려야 합니다. 긴 기다림, 그리고 혀와 맛의 짧은 만남. 그래도 입가에 미소가 남습니다. 맛이 주는 즐거움 때문입니다. 그 맛의 비밀을 찾아갑니다.》

첫 회는 서울 종로구 소격동 ‘큰 기와집’의 간장게장입니다. 이곳 주인 한영용(38) 씨는 고교를 졸업하기도 전인 18세 때부터 전국 양반가를 섭렵하며 전통 음식을 익혔습니다. 호텔에서도 7년간 요리사로 활동했습니다.

○ 주인의 말

우리 집과 다른 간장게장의 차이?

정말 간단하다. 게장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간장이다. 청주 한씨 집안의 300년 전통이 대물림으로 이어져온 맛이다. 7년간 숙성한 간장은 쓴맛이 줄고, 땅콩처럼 고소한 맛이 감돈다. 그래서 우리 게장은 ‘밥도둑’이 아니다. 한국 전통 음식의 핵심은 발효다. 김치 된장 간장 젓갈뿐 아니라 하다못해 나물을 무쳐도 된장과 간장으로 무치지 않나. 서양에 쓴맛 단맛 신맛 짠맛 매운맛의 5가지 맛이 있다면 우리는 발효를 보태 6미(味)가 있는 셈이다.

7년 숙성 간장에 약재를 넣어 달인다. 산초, 진피(귤껍질), 대추, 황기, 결명자, 도라지, 동충하초가 들어간다. 간장과 게는 모두 냉한 기운이 강해 독을 풀어주는 산초와 몸을 데워주는 진피로 보완해 주는 것이다.

그 다음은 게다. 참게가 좋지만 얄팍해 입에 남는 게 없다. 재료로 가장 좋은 것은 알을 통통하게 밴 5월 암꽃게다. 이 무렵 암꽃게는 알이 차면서 게딱지가 얇아져 몸통이 선홍색으로 보인다. 200∼300m 깊은 바다에서 잡힌 ‘놈’이 좋다. 수면 가까이에서 자란 것은 살이 찰지지 않다.

간장과 게가 준비되면 게를 산 채로 항아리에 담는다. 이때는 간장은 짜고 게는 싱거운 상태인데, 점차 게살 속으로 간장 맛이 밴다.

하루 뒤 게를 건져낸 간장에 마른고추 생강 마늘 청각 다시마 구기자 대추 멸치를 넣고 4시간 정도 끓인다. 이 간장을 체에 걸러 식힌 뒤 게가 담긴 그릇에 붓는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1주일간의 숙성이다.

○ 주인과 식객(기자)의 대화

△식객=“비밀을 공개한 것은 남들이 따라오지 못한다는 자신감 때문인가.”

△주인=“……(웃음).”

△식=“요즘 누가 간장에 7년씩이나 공들이나.”

△주=“맛은 장에서 시작된다. 자부심이 아니라 이렇게라도 장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다.”

△식=“솔직히 땅콩처럼 고소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게장이 심심하지도 짜지도 않고, 비릿하지도 텁텁하지도 않다.”

△주=“그럼 됐다. 전복장도 한번 먹어보라.”

△식=“우문이지만 간장게장의 포인트는 무엇인가.”

△주=“기다림이라고 생각한다. 제맛을 내기까지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식=“맛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언가.”

△주=“한 스승을 정하면 모든 것을 어깨 너머로 배웠다. 요리는 물론 기상과 취침 시간, 밥 먹고 화장실 가는 모습까지 따라 했다. 우리 음식 레시피의 비밀은 곧 생활 자체다.”

○ 큰 기와집 명가 간장 만들기

△재료=조선간장 18L, 물 18L, 검정콩 1되, 소고기 2근, 전복 5마리, 건새우 1kg, 다시마 5장, 생강 1근, 마늘 2근, 통대구포 2장

△조리법

1. 물에 불린 검정콩과 재료를 가마솥에 넣고 8시간가량 은근한 불에 달이면서 거품을 걷어낸다.

2. 간장물이 18L로 줄면 불을 끄고 마지막으로 다시마를 넣는다.

3. 간장이 완전히 식으면 체에 걸러 항아리에 담는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