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17일 (한국시간 18일) 인도(人道)·사회·문화적 문제를 담당하는 제3위원회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을 표결에 붙여 찬성 91, 반대 21, 기권 60표로 통과시켰다.
한국은 이번 결의에서 처음으로 북한인권결의에 찬성표를 던졌다. 한국은 그동안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북한인권결의 표결에 불참하거나 기권표를 던져왔다.
이날 통과된 북한 인권 결의는 △고문과 공개 처형, 수용소 강제노역 △사상 양심 종교 의사표현 제한 △북한 주민의 심각한 영양실조 및 경제 사회적 권리 침해 등에 우려를 표명하며 개선을 촉구했다. 결의는 이와 함께 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이 내년 총회 기간에 북한 인권에 대해 포괄적 보고서를 제출할 것을 촉구했다.
▽북 차석대사 일본에 '막말 폭탄'=김창국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인권결의는 미국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통과시킨 조작된 문건"이라며 "이번 결의를 단호하게 반대하며 거부한다"고 반발했다.
김 차석 대사는 특히 "뿌리 깊은 적대심과 재침략 야욕에 '미쳐 있는'(crazy) 일본이 '북한 인권법' 등 웃음거리와 같은 법안을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일본 대표는 "북한은 일본에 부적절한 언어사용을 중단하라"고 반박했다.
김 차석 대사는 몇 년 전에도 유엔에서 '잽'(Jap·영어에서 일본인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이에 앞서 박길연 대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핵 실험과 관련해 결의를 통과시키자 '조폭 같은'(gangster-like)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남북관계 복원에 그림자?=북한은 북한 인권결의안에 찬성한 한국 정부에도 강한 반감을 표시했다.
북한은 특히 노무현 정부가 미사일 발사에 쌀과 비료 지원 중단, 핵실험에 유엔 대북제재결의 찬성으로 대응해온 데 이어 자신들이 체제붕괴 의도로 간주해 온 인권결의안 마저 찬성표를 던지자 "6·15 공동선언의 기초를 파괴하고 북남관계를 뒤집어엎는 용납 못할 책동"이라며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18일 담화를 통해 "(남한은) 북남관계에 장애를 조성한 범죄행위로 초래될 모든 엄중한 후과(결과)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며 "외세의 눈치를 보면서 권력을 지탱하는 자들은 우리와 상종할 체면도 없을 것"이라고 강변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현 정부 임기가 끝날 때까지 일절 당국간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1년여의 임기만 남아있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더 이상의 성과 없이 사실상 마감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북 대화나설 것" 관측도=한편 남측의 인권결의안 찬성이 '선언적' 조치에 불과하며 인도주의적 지원 등 대북정책의 기조가 변경되지 않았다는 점을 북한도 잘 알고 있어, 적절한 시기에 당국간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실제로 이날 조평통 성명에는 구체적인 대응조치가 들어있지 않다.
고려대 북한학과 남성욱 교수는 "머지않아 식량난에 처할 북한이 식량지원을 요구하며 남측과의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으므로 남북관계 정상화의 기회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철저히 민간과 당국을 분리해 대응하는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당국간의 사업과 회담은 미뤄두면서도 경제협력사업이나 민간급 교류 등 경제적 실익을 취할 수 있는 사업은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뉴욕=공종식특파원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