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이 19일 북핵 폐기를 전제로 미국이 ‘6·25 전쟁의 종료’를 선언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힌 것은 북한이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는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철회’를 위한 구체적인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이 핵개발에 나선 이유로 ‘(미국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체제보호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해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북-미 간의 종전(終戰) 선언에 따른 적대관계 청산은 북핵 보유의 전제조건을 무력화할 수 있다.
결국 북한이 핵을 자진해서 폐기할 명분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으로 난관에 봉착한 6자 회담 진전에 돌파구를 마련해 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이날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직후 브리핑에서 “양 정상은 대북 경제지원과 안전보장, 그리고 평화체제 문제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상응하는 조치를 협의했다”고 설명해 양국 정상 간에 종전 선언에 따른 평화체제 구축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가 있었음을 밝혔다.
▽6·25전쟁 종료 선언의 의미?=문자 그대로 53년째 정전(停戰)상태로, 기술적으로는 현재진행형인 6·25전쟁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뜻이다.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조성렬 기획실장은 “지난해 9·19 공동성명 4항에서 언급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나 북-미 수교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전쟁상태의 종식 의지에 대한 정치적 선언”이라고 말했다.
종전선언은 필연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논의로 이어진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1953년 정전협정에 서명한 당사국인 미국과 북한, 중국을 포함해 교전 당사국이었던 한국이 대화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종전선언이 궁극적으로 북-미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질 것인가 하는 점. 북한은 1990년대에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북측 대표와 중국 대표단을 철수시키고 중립국 감독위원회를 무력화하는 등 정전협정을 사실상 사문화시키면서 지속적으로 북-미 간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해 왔다. 북측이 의도하는 것은 평화협정을 통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토록 하는 것.
하지만 남측은 ‘당사자 해결원칙’에 따라 남북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관련국이 이를 보장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며 미국도 한국의 방침을 지지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6자 회담이라는 틀 속에서 구성되는 ‘평화포럼’에서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생각이다.
▽남북을 동시에 겨냥한 메시지=미국이 ‘6·25전쟁 종료’ 선언을 북한의 핵 포기에 따른 대가에 포함시키고, 이를 공개한 것은 남북한에 동시에 던지는 메시지로 보인다.
북한은 지금까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원치 않는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설명해 왔다는 점에서 전쟁의 종료는 북한에 ‘핵 포기 명분’을 줄 수 있다는 것.
또 거듭된 설명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국의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미국의 ‘북한정권 인위적 교체 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한국정부에 다짐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정부가 미국의 정책을 충분히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몇 차례 반복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의 북한정책이 ‘통역(translation)’ 과정에서 혼란(garbling)이 있었다”고 말했다. 통역과정이란 회담장의 영어 통역이라기보다 “북한 공격 의지가 없다”는 부시 대통령의 공개발언이 한국에서 잘 먹혀들지 않는다는 인식을 반영한 말이다.
▽북한 반응은?=북측이 미국의 이 같은 제의에 대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이 적극적으로 적대관계 해소 의지를 밝혔다는 점이나 핵 폐기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과 관련한 로드맵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줬다는 점에서 북측이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안보연구원 김성한 미주연구부장은 “북한은 자신들이 핵을 폐기해도 미국이 금융제재나 인권 압박을 계속할 것이라는 우려를 해 왔는데 미국의 종전 의지 표명은 핵 폐기가 북-미관계 정상화의 충분조건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평화체제 구축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다. 북한의 핵 폐기가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유엔사 해체에 따른 평화체제의 관리주체, 주한미군의 지위 등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많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유엔-北-中 체결… 남북 적대행위 일시정지
:정전협정: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金日成),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가 서명함으로써 체결된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영어, 국어, 중국어로 작성됐고 내용은 서언과 전문 5조 63항, 부록 11조 26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협정으로 남북의 적대행위는 ‘일시적’으로 정지됐고 남북한 사이에는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이 설치됐다.
군사행동 중지 평화회복-우호관계 맺어
:평화협정: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나라나 지역에서 군사행동을 중지하고 평화상태를 회복하거나 우호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맺는 협정. 북한은 1974년부터 정전협정에 참가하지 않은 한국을 제외한 북-미 간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고 있으며 한국은 실질적 교전당사국으로서 협정 체결에 참여해야 한다는 당사자 지위를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