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 하면 성난 얼굴이 떠오른다. 지나치게 개혁에 집착해 융통성 없이 너무나 단호하고, 쌀쌀하고, 성난 얼굴로 국민을 쳐다보니까 국민도 성난 얼굴로 대하게 됐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21일 김근태 의장을 비롯한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원 10여 명에게 ‘특강’을 하면서 여권의 현주소를 이렇게 말했다. 송 교수는 진보 성향으로 알려져 있으면서도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는 동시에 뉴라이트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왔다는 점에서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그를 초청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례적이다.
송 교수는 이날 “여권은 도덕성 개혁성만 내세웠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경제정책에서 실패했다. 국민을 섬기겠다고 하더니 오히려 오만했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열린우리당이 사립학교법 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종교계와 사학의 반발을 산 점을 들어 “세계 어느 나라에서 종교계가 등을 돌리게 만들어 놓고 집권한 적이 있느냐. 재집권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이어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 등 이른바 ‘4대 개혁입법’에 집착했다고 지적하며 “무리하게 개혁을 추진한 것이 문제다. 국민을 계몽 대상으로 여긴 점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는 “본래 보수 세력은 조직화를 잘하지 못하는데도 여권은 무리하게 국보법 폐지 등을 밀어붙여 보수 세력의 조직화와 결속을 가능하게 했다”며 “국보법의 경우 대체 입법 같은 중간 단계를 거쳤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텐데 너무 앞서 나갔다”고 했다.
송 교수는 특히 현 정부의 일방적인 ‘도덕적 우월주의’를 패착으로 지적했다. 그는 “정권 초기에는 도덕성과 개혁성을 내세워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임기 후반에는 경제성과가 더 중요하다”며 “그런데 여권은 경제적 성과를 내지 못했음에도 정치개혁 성과만 강조했다. 이념적 퍼포먼스(성과)에 치우쳐 경제적 퍼포먼스는 너무 약했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의 고언과 진단에 대해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원은 대부분 공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외부 전문가로부터 여권의 현주소와 진로에 대한 도움말을 듣기 위해 특강을 마련했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에 이어 송 교수가 두 번째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