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에서 ‘아이들 잡는’ 대학입시 제도에 대해 학생들의 생생한 불만이 듣고 싶어 물었던 모양이다. “수능에, 논술에, 자꾸 바뀌는 입시 때문에 고생이 많죠?”
카메라에 잡힌 여고생이 대답했다. “입시가 뭔 죄가 있나요. 공부 못하는 우리가 죄죠.”
취재 의도와 한참 빗나간 이 대답은 당연히 방송을 타지 못했다. 집에선 툭하면 “엄마 때문에 1989년에 태어나 이 고생”이라는 불효막심한 딸 ‘막심이’의 소동이었다.
反세계화 환경에도 솟아날 구멍이
하 기가 막혀 “넌 그렇게 잘 아는 애가 왜 공부를 못하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나이든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 그 제도가 어땠든, 환경이 어땠든 될 사람은 어떻게든 제 길을 찾아갔다. 제도와 환경으로 인한 낭비는 엄청나도 남 탓, 성명삼자(姓名三字)를 두 글자로 줄여 부르는 ‘대통령 탓’만 하기엔 시간이 아깝다.
요새 잘나가는 베트남도 한때 제도적 낭비를 겪었던 나라다. 그래도 지금은 제2의 중국으로, 세계의 공장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그 자양분 중 상당 부분은 베트남 공산화 때 자의 반 타의 반 조국을 떠났다가, 나라가 시장경제로 돌아선 뒤 금의환향한 ‘돌아온 용사’한테서 나왔다. 인텔공장의 베트남 지역매니저인 푸 탄 씨의 경우 열네 살 때 사이공을 탈출한 덕에 미국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현지 인텔에 입사했다. 사이공이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탄 씨가 첨단지식을 익히지 못했더라면 오늘의 그도, 베트남도 없을 뻔했다.
‘되는 환경’에선 따라 뛰기만 해도 개인이 더불어 클 수 있어 좋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에마누엘 사에즈 교수는 “부자가 더 부자가 되는 미국 영국 같은 나라에선 파이도 커지는 반면 평등을 강조하는 프랑스는 그 반대”라고 했다. 하지만 프랑스에도 경쟁과 실력은 존재한다. 안 그런 척할 뿐이다.
지금 대학 진학을 눈앞에 둔 사람이라면, 학력사회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든 대도 할 수 없다. 세계는 지식정보화로 달려가므로 할 수만 있다면 최고의 지식과 기술을 익혀야 나중에 취업 때문에 울지 않는다. 미국의 변호사이자 경제학자인 벤 스테인은 돈 버는 직업을 갖고 싶다면 남을 부자나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전공을 택하라고 했다. 금융 회계 법률 전자공학 생명공학 의학 간호학이 대표적이다.
인문학 등 ‘비실용적’ 학문에서 재미와 보람을 찾는 것도 물론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전문대학원 등에서 실용성을 접목하지 않은 채 취업이 힘들다고 동동거리는 건 욕심이 과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선진국에서도 컴퓨터로 인력 대체가 가능한 ‘중간층’은 위아래로 치이는 실정이다.
만일 우리나라에 반(反)세계화 정서가 없고,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이라면 이런 중간층 일자리를 얼마든지 받아오고 또 키울 수 있을 거다. 컨설팅회사인 매킨지는 인건비 덜 비싼 외국으로 이동하는 선진국의 서비스업 일자리가 2005년 56만5000개에서 2008년엔 120만 개로 늘 거라고 했다. 지금 같은 반(反)시장 분위기에선 당장 국내외 기업의 투자가 늘어 일자리가 팍팍 는다고 기대하기 어렵다.
‘깡’과 ‘끼’로 역경 뒤집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아무 대학, 아무 과(科)나 가고 본다면 졸업 땐 그동안 바친 등록금과 시간이 더 아까워질 가능성이 크다. 그럴 바에야 대면 접촉이 꼭 필요하고, 사람 손이 가야만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확실한 기술을 익히는 게 백번 낫다. 부모님 노후자금 축내며 살지 않으려면 말이다.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제도와 환경에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어렵고 막힐 때마다 최선의 선택을 통해 역경을 기회로 만들었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지식과 기술만 아니라 ‘깡’과 ‘끼’가 중요하다. 깡과 끼는 스스로의 힘으로도 키울 수 있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모양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