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고 퍼브(대중술집)에서 폭음과 흡연을 즐겨온 영국인에게 가장 흔한 병이 발작 후 몇 시간 안에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심장병이다.
영국 로열 브롬튼 & 헤어필드 국립병원(The Royal Brompton & Harefield NHS Trust)은 심장병 분야에서 유럽 최고의 병원으로 꼽힌다.
특히 헤어필드 병원의 심장 및 폐 이식 분과가 유명하다. 2500여 차례의 심장 이식수술이 이곳에서 이뤄졌고 현재 평생 사후관리를 받고 있는 심장 이식환자가 1200명을 넘는다.
이 병원은 또 임페리얼 칼리지 의대(The Imperial College School of Medicine)의 '국립 심장 및 폐 연구소(The National Heart & Lung Institute)'와 함께 '인공 심장' 개발을 주도해왔다.
영국 병원 평가에는 국가의 연례 실적 평가와 민간 회사 닥터 포스터(Dr. Foster)의 병원 등급이 주로 인용된다. 로얄 브롬튼 & 헤어필드 국립병원은 국가의 연례 실적 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별 3개를 받았다.
또 닥터 포스터 등급으로는 맨체스터의 위센스하위 병원과 함께 심장병 분야의 최고 병원으로 꼽혔다. 로열 브롬튼 병원은 런던의 부촌인 켄싱턴 첼시 버러에, 헤어필드 병원은 런던 북서쪽 힐링던의 전원주택 지역에 있다. 두 병원은 1998년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통합됐다.
▽첨단 의술 개발=로버트 홀랜드(45) 씨는 자신의 피부조직으로 만든 심장판막을 이식한 세 번째 환자다. 그동안 심장판막은 티타늄 같은 합금이나 돼지 또는 소의 피부조직으로 만들었는데 환자 자신의 피부조직으로 만든 심장판막이 이 병원에서 새로 개발된 덕분이다.
합금으로 만든 심장판막은 평생 사용이 가능하지만 피가 응고되기 쉬워 이를 방지하는 약을 함께 복용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돼지나 소의 피부조직으로 만든 심장판막은 피의 응고를 막는 약을 복용할 필요는 없지만 수명이 길지 못하다.
홀랜드 씨는 워트포드 병원의 전문의에게 다른 방법이 없는지 문의했고 그 전문의는 헤어필드 병원을 소개했다. 홀랜드 씨는 심장 박동이 중단되는 4시간의 힘든 수술 끝에 현재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환자에게 다가가는 체제=돈나 리차드슨(18) 양은 2차례의 심장발작을 겪고 응급차로 지역병원에 실려갔다. 돈나 양은 곧 옥스퍼드의 존 래드클리프 병원으로 이송됐다. 못쓰게 된 혈관을 다른 혈관으로 이어주는 심장 바이패스 수술을 2차례 했다.
수술은 잘 됐지만 심장 역할을 대신해주는 기계 장치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했다. 의사는 돈나 양의 유일한 선택은 심장 이식밖에 없다고 결론내리고 헤어필드 병원과 접촉했다.
그러나 돈나 양은 헤어필드 병원으로 이송되기에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헤어필드 병원 의료팀이 래프클리프 병원으로 향했다. 의료팀은 돈나 양에게 일단 인공 심장을 장착했다.
이번엔 헤어필드 병원의 심장 이식 코디(co-ordinator)가 돈나 양을 방문했다. 인공 심장은 심장 기증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가교 역할을 할 뿐이다.
심장 기증자가 나타나 9시간 반이 걸린 긴 수술 끝에 돈나 양의 몸에서 인공심장을 떼 내고 기증자의 심장을 이식했다. 돈나 양은 현재 6개월마다 한번씩 검사를 받고 매일 이식 거부반응을 방지하기 위한 약을 복용하고 있다.
▽대기 환자 케어(care) 시스템=알랜 스프루스(71) 씨는 지난해 12월 심장마비를 겪고 수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로서는 긴급한 수술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고 단지 언덕을 오를 때나 추운 아침에 숨이 차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영국 병원은 무료이다 보니 환자들의 대기 시간이 턱없이 길다. 그는 수술까지 9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로열 브롬튼 병원의 간호사가 4차례 그의 집을 방문해 심장 상태를 점검했다. 그는 올 9월 4차례의 바이패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지금은 집 근처의 재활센터에 다니면서 규칙적인 운동도 하고 있다.
세심한 대기 환자 관리는 의사들이 아니라 병원 경영자들의 몫이다. 수많은 환자들이 늘 대기하는 상황에서 의사들이 진단과 치료 외의 부수적 일에 신경쓰지 않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심장외과 전문의 마그디 야쿠브 경 인터뷰
마그디 야쿠브(71) 경은 지금까지 2000여 회의 심장 이식수술을 집도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심장외과 전문의다. 1980년 그로부터 심장 이식수술을 받은 후 25년간 생존하다 지난해 사망한 데릭 모리스 씨는 유럽 최장수 심장 이식 환자로 기록돼 있다.
야쿠브 경은 최근 환자의 심장에 '휴식 시간'을 주는 동안 임시로 인공 심장을 사용하는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는 "심장 이식수술에서는 기증되는 심장이 늘 부족하고 그런 심장이 있다 하더라도 환자의 이식 거부반응을 걱정해야 한다"면서 "의사가 환자 본인의 심장을 재활용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시험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번 시험은 말기 심근증 환자에게 인공심장을 장착시켜 환자 자신의 심장을 쉬게 하고 그로부터 6개월 뒤 원래 심장을 다시 이식해 예후를 본 것이다.
그는 "실험에 참가한 심근증 환자 15명 중 4명은 자신의 심장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아 결국 심장 이식수술을 받았다. 나머지 11명은 인공심장을 떼내고 다시 자신의 심장에 의지했다. 그 결과 1명은 하루 만에 사망했고 1명은 27개월 뒤 폐암으로 숨졌으며 1명은 다시 심장병을 일으킨 뒤 심장 이식수술을 받았다. 이들 3명을 제외한 9명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탈 없이 생존해있다"고 말했다.
이는 환자들이 처했던 심근증 말기 상태에 비춰볼 때 놀라운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야쿠브 경은 1957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나 카이로 대학에서 의사 자격을 땄다. 1969년 헤어필드 병원에 부임한 그는 매년 200건의 심장 이식수술을 하면서 이 병원을 영국 최고의 심장 이식센터로 이끌었다. 199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이집트에서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보다 더 유명한 인물이다.
2001년 병원에서 은퇴한 후 1993년 자신이 창립한 헤어필드 연구재단(Harefield Research Foundation)에서 헤어필드 병원 의료진과 함께 심장병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로열 브롬튼 & 헤어필드 국립병원 개황
▽연간 환자수 : 외래 8만4300여명
입원 2만4900여명
▽병상 450개
▽직원(의사, 간호사 등) 2500명
▽홈페이지: www.rbht.nhs.uk
▽개인환자과
로열 브롬튼 병원: 전화 44-1895-828-857, e메일 k.rushton@rbht.nhs.uk
헤어필드 병원: 전화 44-20-7351-8484, e메일 r.riddle@rbht.nhs.uk
런던=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