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닫힘’이고 성문은 ‘숨구멍’이다. 농민들은 ‘성 밖으로 나가면 죽고, 성 안에 있으면 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목민들은 ‘성을 쌓고 성 안에 안주하는 순간 죽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삶과 죽음은 능선 하나 차이다. 대남문(663m) 일대의 북한산성. 이곳에선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서영수 기자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가장 높은 정신은/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山頂은/얼음을 그대로 뒤집어쓴 채/빛을 받들고 있다. 》
겨울 문턱. 북한산은 뼈만 남았다. 우뚝우뚝 바위만 남았다. 서울은 북한산과 한강 사이에 있는 거대한 돔구장이다. 본부석은 바로 북한산. 그곳에서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3개 돌기둥이 북쪽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북한산을 삼각산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왕궁인 경복궁은 본부석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산은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지리산과 함께 한국의 5대 명산. 종로나 광화문에서 북한산을 바라보면 본부석 쪽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이 보이고, 그 뒤로 뾰족하게 삼각머리를 내밀고 있는 보현봉(714m)이 눈에 들어온다. 보현봉은 목을 앞으로 쭉 빼고 북악산 너머로 서울 시내를 넌지시 엿보고 있다. 그래서 엿볼 ‘규(窺)’자를 써서 ‘규봉(窺峰)’이라고도 한다. 보현봉은 만경대의 정남향.
산행 코스 대서문∼대남문 대남문∼위문 북문∼대서문 3부분으로 나뉘어
돔구장엔 반드시 보조경기장이 있다. 서울 안에서도 ‘숨겨놓은 장안’이 있다. 본부석 뒤쪽에 있는 ‘북한산성’이 그것이다. 유사시 도성이 함락되면 왕은 경복궁을 버리고 이곳에서 비상집무를 하게 된다. 성안 넓이도 약 200만 평(6.6km²)으로 여의도(89만 평)의 2.25배나 된다. 4대문으로 둘러싸인 한양도성 약 232만 평(7.66km²)에 비해서도 결코 좁지 않다.
북한산성 한 바퀴는 총 12.7km. 하지만 등산 코스는 산성을 우회하는 곳도 있으므로 13km가 넘는다. 산행 시간은 8시간 안팎. 산성은 약간 찌그러진 왕관 형태다. 크라운 관전면 삼각뿔이 바로 북쪽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이다. 보통 북한산성 산행은 북한산성 입구(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1번 출구∼704번 간선버스∼산성입구 하차)에서 시작한다. 방향은 시계 반대 방향. 왼쪽에 심장이 있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심장 안쪽으로 돌게 마련. 육상 트랙이 그 좋은 예다. 코스는 크게 3부분으로 나뉜다. 대서문∼대남문의 의상능선과 대남문∼위문의 산성주능선, 그리고 북문∼대서문의 원효능선.
의상능선이 가장 힘들다. 하지만 그만큼 경치가 빼어나다. ‘작은 공룡능선’이라고도 할 정도로 바위길이 많다. 의상봉∼용출봉∼용혈봉∼증취봉(시루봉)∼나월봉∼나한봉∼문수봉 등 7개의 암벽 봉우리를 차례로 넘는 맛이 쏠쏠하다. 초겨울 약간 차가워진 바위를 잡는 손맛도 짜릿하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의상-원효봉이 정겹다. 의상은 원효 보고 웃고, 원효는 의상 보고 웃는다. 출발지점인 대서문에선 왼쪽부터 원효봉 염초봉(영취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용암봉이 차례로 보이다가, 의상봉 쪽으로 갈수록 인수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노적봉의 육중한 암벽이 발군이다.
위문∼북문 너무 위험해 출입통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