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좌파는 줄곧 우파를 비판 공격하는 쪽에 서 있었다. 통일 평화 자주 등 좌파가 던지는 메시지들은 단순명쾌했다. 산업화, 빈곤 해결, 실리 등 우파의 성과는 그 앞에서 왜소해 보였다. 우파를 무력화(無力化)하는 최대의 무기는 도덕성이었다. 우파의 도덕적 흠결이 노출된 가운데 좌파가 ‘자기 패’는 감추고 치는 불공정 게임이었지만 도덕성만 추궁하면 통했다. 지금은 공수(攻守)가 바뀌었다. 권력을 잡은 좌파의 ‘실력’이 드러나면서 우파의 반격이 거세다.
▷좌파 진영의 대표급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올해 초 그가 창간한 계간지 ‘창작과 비평’ 40주년을 맞아 “창작과 비평이 탄탄한 물질적 기반과 인재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옛날과 같은 활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좌파의 무력감이 담긴 말이다. 좌파는 이미 노무현 정권 이후를 준비 중이다. 백 교수는 4월에 같은 좌파이면서도 각론 견해가 다른 최장집 고려대 교수를 실명(實名)으로 비판했다. 좌파 내부의 논쟁을 유도해 좌파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대중적 관심을 되돌리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백낙청발(發) 실명 비판은 우파 진영을 향해 계속되고 있다. 최근 백 교수는 안병직 뉴라이트재단 이사장, 박세일 서울대 교수, 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를 비판했다. 그러자 안 이사장이 응전(應戰)에 나섰다. 백 교수가 펴 온 ‘분단체제론’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평소 “사상전을 생각하면 피가 끓는다”고 말해 온 안 이사장이기에 앞으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그가 펴내는 계간지 ‘시대정신’은 내년 봄호에 최장집 교수를 실명 비판할 예정이다.
▷이들의 속내는 서로 다르다. 좌파 진영은 반전(反轉)의 계기를 찾고 있고, 우파 쪽은 이참에 좌파의 허구를 파헤치겠다고 벼르고 있다. 좌파의 베일이 걷히면서 전세(戰勢)는 일단 우파 쪽으로 기운다. 좌파 ‘거물(巨物)’ 리영희, 강만길 씨 등도 자유롭지 않다. 영향력이 커질 대로 커진 만큼 엄격한 검증 대상에 오를 수밖에 없다. 실명 비판은 그 시간을 앞당길 것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