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공연]보성소리 4대 명창의 판소리 현대화 ‘얼쑤’

입력 | 2006-11-28 03:02:00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릴세, 꽃 좋고 열매 많으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칠세, 내를 이루어 바다에 나가니∼.”

한글로 된 최초의 문학작품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와 조선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호질(虎叱)’이 판소리로 선보인다. 4대째 보성소리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소리꾼 정회석(43) 씨가 작창(作唱)한 이 곡은 다음 달 8일 오후 7시 반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첫선을 보인다.

서편제 소리의 창시자인 박유전의 제자였던 증조할아버지 정재근, 할아버지 정응민, 아버지 정권진 씨로 이어진 정 씨 집안은 130년간 ‘보성소리’ 명가의 계보를 이어왔다. 그는 부친에게서 판소리 심청가 춘향가 수궁가 적벽가를 사사했고, 명창 성우향에게서 춘향가를 이수받기도 했다.

판소리 ‘용비어천가’와 ‘호질’은 연극평론가 구히서 씨가 글을 재구성했고, 정 씨가 직접 소리와 작창을 맡았다. 조선왕조의 창업을 송영하는 ‘용비어천가’는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와 유구한 역사에 자긍심을 갖게 하는 내용으로, 호랑이가 인간의 부도덕함과 이중성을 꾸짖는 ‘호질’은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재구성됐다.

“판소리 ‘용비어천가’는 단군으로부터 고구려 발해 신라 백제 등으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이 한 뿌리에서 나온 것임을 말해 준다. 일본이나 중국이 역사 침략을 해 오고 있는데, 조선시대 백성들의 정신적 근간으로 삼았던 ‘용비어천가’를 좀 더 대중적인 판소리 단가로 소개하고 싶었다.”

정 씨는 “보성소리의 정통 가문에서 태어난 제가 창작 판소리를 만들어내는 데는 고민이 많았다”며 “그러나 전통소리도 잘 보존하고, 현대인들도 공감하는 새로운 레퍼토리 개발에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부인은 ‘해금의 명인’으로 이름이 높은 정수년 씨. 그는 이번 공연에서 남편이 판소리 ‘심청가’를 부를 때 고수의 북소리 대신 해금과 바이올린, 첼로 등 클래식 악기로 구성된 ‘아리 앙상블’로 반주를 하는 실험적인 무대도 선보인다.

정 씨는 “두 아들(중 3년, 초등 4년)도 현재 해금과 판소리를 배우고 있다”며 “제가 어릴 적에 그랬듯이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집에서 늘 국악 소리가 끊이지 않으니 어깨너머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의 02-6334-0393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