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DJ) 정부와 현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S 씨는 “차라리 감옥에 갇혀 있을 때가 행복했어요. 그때는 민주화 쟁취라는 꿈이라도 있었죠”라고 쓸쓸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DJ의 ‘비판적 지지자’였고 노무현 대통령의 열성적 지지자였다.
“지금은 벙어리 냉가슴입니다. 언론은 후련하게 비판이라도 할 수 있겠지요. 우리는 정권 창출에 책임이 있으니까 속 시원하게 욕도 못해요.”
그는 참여정부를 망조(亡兆) 들게 한 대표적 실패 사례로 부동산정책을 꼽으며 대통령비서실을 ‘386 보이스카우트’로 깔아버린 인사가 근본적 잘못이라고 탄식했다.
참여정부 창업공신들의 탄식
“지방 대도시의 집값이 서울의 5분의 1도 안 됩니다. 지방 사람은 평생 서울에서 살 수 없게 됐어요. 참여정부가 서민과 미래세대에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정나미가 떨어졌어요. 정부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어요. 시장과 맞서 싸우려고만 했지, 시장을 다룰 줄 몰랐어요.”
K 교수는 최근 신문 칼럼에서 ‘코드 이외의 세력을 적(敵)이나 개혁 대상으로 보는 고립주의 발상이 독약이었다’고 지적했다. K 교수도 2002년 대선 때 ‘왜 노무현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는 말을 들었던 지식인이다.
‘노사모’와 ‘국민의 힘’을 만들어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예술인이 무척 괴로워한다는 이야기도 S 씨한테서 전해 들었다. “팔을 걷어붙이고 만든 정권이 바닥을 치다 못해 ×판을 치고 있는데 괴롭지 않겠어요.”
그래도 들어본 중에서는 창업공신 장관의 말이 가장 당당했다. “한나라당이 정권 잡는다고 나라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능하면 정권 뺏기는 게 당연하지요. 이제부터라도 똑바로 하면 돼요.”
허준영 전 경찰청장은 현 정부 초기에 청와대에 들어가 1급 비서관을 했다. 386들은 청와대 회식 자리에서 감옥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는 10년 후배뻘인 386들과 지낸 1년을 회고하며 “감옥 갔다 온 이력이 자랑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 정부 주체세력과 인연이 없었던 그는 노 대통령의 얼굴을 직접 볼 기회가 없었다. 386들은 아침저녁으로 안채에 들어가 대통령과 식사를 했다.
“대통령은 사회 각계의 전문가들을 돌아가며 만날 시간도 모자라는 자리입니다. 술 마실 때 감옥 갔다 온 이야기를 안주로 삼는 젊은 사람들에게서 대통령이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었을지 모르겠어요.”
이른바 범국민운동본부, 민주노총, 전교조의 불법에 정부가 법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사태도 근원을 따져 보면 감옥에서 인연이 얽히고설킨 386들의 동지의식 때문이다.
창업공신들의 근황을 전해 준 S 씨는 현 정부 초기에 필자에게 “조동중(朝東中) ‘찌라시’(광고 전단지를 뜻하는 일본말) 안 본 지 오래됐습니다”라는 가시 돋친 말을 던지곤 했다. 태도가 바뀐 것은 대체로 올해 5·31지방선거 이후로 기억된다. 그가 어떤 칼럼을 거론하며 “틀린 말 없더군요”라고 말했다. 왜 ‘찌라시’를 다시 보기 시작했을까.
독재엔 이겼지만 시장엔 졌다
현 정부가 시장과 맞서 싸우다가 실패한 것은 부동산만이 아니다. 정부는 국민 세금 100억 원을 들여 이른바 신문공동배달센터를 만들고 내년에 350억 원을 쏟아 붓겠다고 예산을 요구했다. 주류 신문을 밀어내기 위해 신문시장에 직접 개입해 친여(親與)신문 유통망을 짜주는 것을 아직도 개혁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대통령이 주장(主將)이 돼 주류 신문을 줄기차게 공격했지만 시장의 선택이 바뀌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386은 거리에서 투쟁하고 감옥에 드나드느라 시장을 공부하고 체험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들은 독재정권과의 싸움에서 이겼지만 시장에서는 패배했다. 시장과 싸우다 3년 9개월이 훌쩍 가고 1년 3개월이 남았다. 초기의 도도함은 사라지고 뒤뚱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다. 지금까지의 실패를 조금이라도 만회하려면 감옥의 추억에서 깨어나 시장의 힘 앞에서 겸허해져야 한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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