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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권순택]개성 냄비

입력 | 2006-11-29 03:00:00


2004년 12월 15일 오전 11시 북한 개성시 봉동리 벌판에 세워진 개성공단 시범단지 1호 입주업체 리빙아트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냄비가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공단의 첫 작품인 ‘개성 냄비’ 1000세트는 트럭에 실려 오후 2시경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냄비는 오후 6시부터 서울 도심의 백화점 특설매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판매 개시 15분 만에 400세트가 나갔다. 2000년 8월 남북이 개성공단 건설에 합의한 이후 4년 4개월 만에 ‘개성 시대’의 막이 올랐던 것이다.

▷약 2년이 지난 그제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개성 냄비를 생산하는 소노코쿠진웨어 김석철 회장과 이 회사 전신인 리빙아트 강만수 회장을 남북협력기금 유용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대출받은 남북협력기금 30억 원 중 3억 원을 개인 빚 등을 갚는 데 썼다는 혐의 때문이다. 이로 인해 “남북협력기금 횡령은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온 통일부만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다. 김 회장은 투자자 불법 유치 혐의도 받고 있다.

▷남북협력기금은 1991년 남북 교류와 경협을 위해 설치된 기금이다. 1998년 이후 대북(對北) 경수로 건설, 쌀과 비료 지원,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 등에 쓰인 기금은 4조4700억 원이나 된다. 북에 그렇게 퍼 준 대가가 핵실험으로 되돌아왔는데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는 그제 한나라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내년도 남북협력기금 예산 1조1855억 원을 한 푼도 깎지 않고 정부안대로 통과시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기뻐했을 법하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어제 개성공단 관계 기관장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북의 핵실험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개성공단 사업이 궤도에 진입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북의 핵 포기를 통한 북-미 관계 개선 없이는 전략물자 반입도 안 되고 공단 제품의 대미(對美) 수출도 안 돼 발전에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북-미 관계는 고사하고 공단 입주업체 하나 관리 못 하면서 이렇게 낙관만 해도 되는 것일까. 그 책임을 누가 질 텐가.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