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장사 터에서 ‘금오신화’를 쓴 김시습이 몸으로 보여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실천적 선비정신을 배웠습니다. 신라 화랑의 숨결을 느끼고 김시습이 용장에서 품었던 굳은 정신을 본받고 싶어요.”
경북 문경시의 점촌고 1학년 함지용(16) 군은 24일 경주남산 일대 16km를 처음으로 걸은 뒤 이렇게 말했다.
함 군은 경주남산 자락에 있는 화랑교육원이 마련한 자기계발 과정에 같은 학년 170명과 함께 참가했다.
함 군은 “경주남산 곳곳에 배어 있는 화랑의 숨결과 김시습의 정신이 느껴져 뭉클했다”며 “인생에서 중요한 고교 3년간을 좀 당당하고 큰 마음으로 살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경주남산 동쪽 기슭에 있는 화랑교육원이 고교생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우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경북도교육청이 고교생의 심신수련을 위해 1973년 5월 전국 처음으로 설립한 곳이다.
4만1000평의 터에 잔디운동장을 비롯해 각종 수련시설이 갖춰져 있다.
지금까지 경북도내 고교생 33만여 명이 이곳에서 화랑정신을 배우고 느꼈다. 올해도 4000여 명의 남녀 고교생이 3박 4일씩 자기계발과 적응력 배양 과정 등에 참여했다.
3박 4일 일정이지만 프로그램이 알차 고교생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오전 6시에 일어나 토함산 위로 솟는 해를 보며 하루를 시작해 화랑정신, 리더십, 회의진행 방법, 국궁, 민속놀이 등을 배운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 열리는 경주남산 일대 국토순례와 화랑의 밤 행사.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씨를 가꾸겠다고 다짐하는 ‘새 화랑 탄생’ 선서.
또 학생들은 경주남산을 오르내리며 나정, 포석정, 용장사 터, 서출지, 통일전 등 10곳에서 문화재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된다.
화랑교육원 이택 원장은 “세계문화유산인 경주남산에서 며칠간 머무는 것은 고교시절의 소중한 체험”이라며 “이곳을 거쳐 간 청소년들이 큰 뜻을 품고 자기의 삶을 알차게 설계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야간에 촛불을 들고 새 화랑 탄생 선서식을 마친 일부 학생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짓기도 한다.
점촌고 1학년 오운영(16) 양은 어머니께 쓴 편지를 통해 “어머니에게 짜증과 불만을 퍼붓기만 하던 제 자신이 오늘밤엔 원망스럽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늘 저를 따뜻하게 품어주셨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달라진 딸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사랑합니다”고 말했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