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회 사건’ 수사가 정치권과 청와대에 포진한 386 세력의 벽에 부닥쳤다는 정황이 끊임없이 포착되고 있다. 본보는 일심회 핵심 인물인 장민호 씨의 대북(對北) 보고 문건에 청와대 외교안보라인 비서관 A 씨의 이름이 여러 차례 등장했다고 공안 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27일 보도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과 검찰은 A 비서관을 소환해 조사하지 않으면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듯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김만복 국정원장은 A 비서관 관련 보도 내용을 부인했지만 검찰 고위 관계자는 “1년 뒤에는 사실이 될 수도 있다”고 여운을 남기는 발언을 했다. 현재로서는 사실을 다 공개하기 어려운 복잡한 속사정이 있다는 말 같기도 하고, 1년 뒤에 정치적 상황이 바뀌어 재수사가 이루어지면 결국 실체가 드러나고 말 것이라는 암시 같기도 하다.
권력 겁나 미봉하면 後日이 더 무서울 것
국가안보와 국민의 안녕을 위협하는 간첩에 대해 소홀하게 수사하거나 실체를 덮어 버리는 것은 국가체제를 흔드는 중대한 직무 유기다. 역대 국정원장들은 정권에 충성하다가 줄줄이 교도소로 갔다. 지금 흘러나오는 간첩사건 축소봉합설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면 국정원과 검찰은 지난날의 쓰라린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수사는 모든 것을 백일하에 밝혀 놓고 나서 드러난 사실을 토대로 법 적용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검찰이 권력 핵심부의 압력에 눌려 수사를 미봉했다가 특별검사제도 발동 또는 재수사라는 수모를 당한 일이 과거 여러 차례 있었다. 국정원과 검찰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일심회 사건 수사에 소극적이라면 특검제 도입도 논의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 국기(國基)를 흔드는 간첩사건을 적당히 축소봉합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국정원과 검찰은 후일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햇볕정책 실시 이후 국정원이 간첩 수사에 소극적이 되면서 북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간첩 혐의자들이 공공연하게 우리의 국체(國體)를 허무는 활동을 해도 아무도 손을 대지 않고 오히려 피하는 세상이 됐다. 친북반미단체 회원들은 평택 미군기지, 인천 자유공원, 서울 도심 대로를 누비며 북의 선전매체와 똑같은 주장을 하고 폭동시위를 벌인다. 누가 간첩이고 누가 간첩이 아닌지 분간하기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김정일 체제와 북의 핵실험을 옹호하는 단체들이 어떤 형태로든 북과 연계돼 있을 것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드러난 그 실체의 일부만 보고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운동을 이끈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공동의장 강순정 씨가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강 씨는 간첩죄로 4년 6개월을 복역하고 나와 보안관찰 대상인데도 작년 7월 철거 시위를 주도했다. 강 씨는 연방통추 외에도 통일연대, 범민련 등 5개 단체의 고문을 맡고 있다. 미군기지 이전 반대운동을 비롯한 친북반미 활동의 핵심 단체들이다.
그렇다면 공안 당국은 간첩 혐의자 강 씨가 연루된 단체들에 대한 배후 수사에도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두더지가 저수지의 둑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곳저곳에 구멍을 뚫고 있는데 이 나라 정부는 동족론(同族論) 평화론 자주론에 빠져 안보불감증을 국민에게 전염시키고 있다. 공안 당국도 그 일부로 눌러앉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