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굴복했다.” 정말인가?
“대통령이 갖고 있는 정치적 자산은 당적과 대통령 직뿐이다.” 그게 어딘데?
“다만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 염려는 없다. 쿠데타로 임기를 마치지 못한 대통령은 이미 두 분이 있으니 노 대통령이 첫 번째가 될 염려는 없다. 2000년대의 한국은 휴대전화의 보급과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쿠데타 음모나 수행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타의 아닌 ‘자의’에 의해 임기를 마치지 않은 첫 번째 대통령이 된다는 말인가. 그래도 되는 것인가? 일선 병사가 군 복무가 힘들어 ‘군인 노릇 못해 먹겠다’고 넋두리할 수는 있다. 그러나 병사가 자의에 의해서 군 복무의 임기를 마치지 않을 수가 있는가. 그게 허용될 수 있는가.
대통령은 ‘국군을 통수’하는 국가원수다. 일개 병사도 자의로, 임의로 복무 임기를 단축할 수 없는데 국군의 통수권자가 이 노릇 못해 먹겠다고 임기도 마치지 않고 물러난다? 그래도 되는 것인가.
국민은 싫어도, 원치 않아도 병역의무에 의해 거의 강제적으로 군에 복무한다. 자연인 노무현 님에게는 싫어도, 원치 않아도 대통령에 취임할 의무는 애당초 없었고 강제도 없었다. 까놓고 말씀드리자면 노무현 님께서 모든 국민에게 대통령 시켜 달라고 사정했던 것이지 모든 국민이 노무현 님께 대통령 되어 주십사 하고 사정한 것은 아니다.
물론 노무현 님에겐 대통령 노릇 하기가 벅차고 때로는 힘에 겨울 때도 있으리라는 건 권부의 주변을 얼씬거리지 않아도 어림짐작은 간다. 한 집안의 살림을 꾸려 갈 가장 노릇 하기도 쉽지 않은데 하물며 큰 나라 살림을 꾸려 가는 대통령 노릇 하기가 얼마나 힘들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런 힘든 일을 감히 맡겠다고 나서야 대통령이 되는 것이지 비싼 전용비행기 타고 해외에 국빈 방문이나 하겠다고 대통령이 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쉬운 일이 없다. 남들 잠든 시간에 휴전선을 지키는 군인이며 거리를 지키는 경찰관서부터 교도소를 뜬눈으로 지키는 교도관에 이르기까지 국민을 섬기는 일이란 모두 고역이다.
대통령의 책무가 무엇인가.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영속성을 수호하는 것이 대통령의 책무다. 전제왕권 시대에도 프로이센의 계몽군주 프리드리히 대왕은 자신을 ‘국민의 첫 번째 하인(下人)’(le premier domestique)이라 불렀다. 민주국가에서 행정의 수반 대통령은 나라의 공복인 모든 관리를 통솔하는 ‘국민의 첫 번째 심부름꾼’이다. 힘들어 못해 먹겠다고 위에서 대통령부터 고만둘 생각을 한다면 나라의 다른 공복이 국민을 제대로 섬기겠는가.
대통령 직은 대선 승리의 전리품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민을 ‘지배’하라고 뽑은 것이 아니라 ‘통치’하라고 뽑은 것이다. 괴테의 말처럼 ‘지배하기는 쉽고 통치하기는 어렵다’. 김정일 노릇 하기는 쉽지만 노무현 노릇 하기는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대통령이 힘이 없다? 이 땅에서 가장 큰 힘(power)을 가진 사람이 대권, 큰 권력(power)을 장악한 대통령 말고 또 있는가? 대통령이 누구에게 굴복한다는 말인가. 대통령이 굴복하면 그를 국가원수로 모신 국민과 그를 통수권자로 받드는 국군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국민을 위한 올바른 대통령의 권한 행사를 누가 막는다고 그래. 야당이? 반대세력으로 야당의 존재는 민주국가의 대전제다. 여당이? 여당은 대통령을 위해 대통령이 만든 대통령의 당이다.
언론이?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언론기관은 대통령 직이요, 청와대다. 가장 힘 있는 언론, 가장 효과적인 언론은 ‘침묵의 언론, 행동의 언론’이란 것은 선전 이론의 ABC다. 대통령의 말, 대통령의 행동은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신문의 1면 머리, 또는 전면을 공짜로 도배질해 보도된다.
국민이 대통령을 위해 무엇이 아니라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묻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국민은 대통령 편이 될 것이고 대통령은 신문 방송의 모든 언론을 장악할 것이다.
대통령에게 힘이 없다? 엄살은 이제 그만 부렸으면 한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 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