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매혹적인 여자를 보았다. 프랑스 여배우 아나 무글라리스. 영화 ‘세르쥬 노박의 겨울여행’(30일 개봉)의 주연인 그녀는 샤넬 향수의 모델 출신. 그녀는 ‘세르쥬…’에서 시아버지와 위험한 관계를 갖는 며느리 역을 맡았다.
그러나 ‘성공한 중년 소설가가 의붓아들의 아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는 한 줄짜리 줄거리로 이 영화는 설명되지 않는다. 선정적이기보다는 운명적이며, 아름답기보다는 처절한 쪽이므로. 무글라리스는 이 영화에서 ‘섹시하고 육감적’이라는 팜 파탈의 전형을 살짝 비껴가면서 치명적이면서도 고전적인, 새로운 이미지를 풍긴다. ‘세르쥬…’의 무글라리스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살펴봤다. 그녀에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하는 비법이 있었으니….
①스스로 만져라=무글라리스는 대화 중 자기 몸의 일부를 습관처럼 만진다. 목덜미를 슬쩍 쓰다듬거나(사진1), 머리카락을 배배 꼬거나(사진2), 입술 사이에 집게손가락을 넣어 좌우로 부드럽게 움직인다(사진3). 이런 행위는 △불안하고 망설이는 심리를 상대에게 노출시켜 남자의 도전 욕구를 부채질하고 △남자로 하여금 여자가 만지는 몸의 부위를 직접 쓰다듬고 싶은 동물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낸다. 일종의 ‘이미지 시위(demonstration)’인 셈.
②손끝으로 말해라=무글라리스의 손은 예쁘고 앙증맞은 편이 아니다. 그러나 손끝으로 구사하는 절묘한 감정 조절을 통해 그녀는 이런 콤플렉스를 장점으로 뒤집는다. 소설가와 정사를 나누면서 침대 시트를 움켜잡거나(사진4), 택시 뒷좌석에서 소설가의 새끼손가락을 움켜쥐는 순간(사진5) 등 그녀의 손가락이 짓는 표정에선 공자가 강조한 ‘중용의 덕’이 묻어난다. 능동적이지도 수동적이지도 않으며, 동물적이지도 무기력하지도 아니한 것이다. 또 정사 중 남편의 견고한 겨드랑이 사이에 사면초가 상태로 갇힌 그녀의 무심한 두 발(사진6)은 때론 무표정이 더 암시적이란 사실을 확인하게 한다.
③귀로 속삭여라=여성의 귀는 일종의 섹스 코드다. 무글라리스는 왼쪽 귀를 살짝 노출시키면서 시각에 민감한 남성의 성감을 자극한다(사진7). 귀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과 귓바퀴 뒤로 넘어간 머리카락, 그리고 뒤로 묶은 머리카락 줄기가 만들어 내는 ‘마의 삼각지대’를 통해 드라마틱하게 드러나는 귀가 일품이다. 한국 여배우 손예진의 새침한 귀(사진8)와 고현정의 수줍은 체하는 귀(사진9)에 못지않은 매력.
④정적인 표정=정사 중 그녀가 보여 주는 표정(사진10)은 강렬하고 과잉된 게 아니라 화석화된 쪽에 가깝다. 얼굴의 감정 표현을 통제함으로써 자신을 평면적인 피사체처럼 보이게 만드는 연기는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을 (심지어 정사 장면까지) 고전적이고 회화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도록 만든다. 이런 이미지는 도발적 내용을 담은 이 영화가 외려 비장하고 원형적인 사랑 이야기의 냄새를 풍기도록 도장한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