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영국에서 태어난 재규어는 1951년 프랑스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우승할 정도로 스타일뿐만 아니라 성능에서도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급변하는 세계 자동차산업에 적응하지 못한 재규어는 1989년 미국 포드사(社)에 넘어가고 말았다. 자존심을 구긴 재규어는 재기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 결과 미국 자동차평가업체 JD파워는 ‘거듭난’ 재규어를 2004년부터 3년 연속 신차구입만족도 1위의 차로 뽑았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여전히 맥을 못 추고 있다. 지난해 218대, 올해 10월까지 360대가 팔렸을 뿐이다.
그 이유가 궁금해 재규어의 상급 모델인 ‘뉴XJ8 3.5LWB(3500cc 롱휠베이스·사진)를 타봤다.
실내는 수제 천연가죽 시트와 호두 나뭇결 무늬가 클래식한 멋을 풍겼다. 시동을 걸고 가속페달을 살짝 밟았다. 낮게 잘 빠진 차체는 부드럽게 움직였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자 강력하진 않지만 귀족적인 분위기로 여유롭게 반응했다. 거친 노면에서 속도를 높여도 에어 서스펜션(충격완화장치) 덕분에 불편하지 않았다.
알루미늄 차체로 무게를 줄여 5.2m에 달하는 거구임에도 몸놀림이 가벼웠다. XJ는 짜릿한 성능보다는 우아한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 차로 보인다.
재규어는 외모가 예술작품 같아서 아무나 소화해내기 힘들 것 같다. 그래서인지 고객의 60%가 지춘희 씨와 같은 패션디자이너와 건축가, 예술가 등 개성이 강한 전문직 종사자다.
강력한 성능의 독일차나 조용하고 세련된 일본차에 길들어 있는 국내 시장에서 재규어의 ‘멋’이 받아들여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럴수록 재규어 마니아들은 신난다. 성능은 갈수록 좋아지고 희소성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