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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삶이 바뀝니다]바이러스는 잡고 사랑은 퍼뜨려요

입력 | 2006-12-02 03:01:00

안철수연구소의 나눔 도우미들이 ‘사랑의 나무’를 앞에 두고 활짝 웃고 있다. 월급의 1%를 기부하는 사람들은 이 나무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위). 지난해 11월 나눔 도우미들이 솜사탕을 나눠 주며 월급의 1%를 기부하큳는 ‘사랑의 1% 나누기’를 홍보하고 있다. 사진 제공 안철수연구소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업체 안철수연구소에는 박스가 많다. 모두 기부를 위한 모금함이다. 6층 안내데스크 앞 박스는 장애인 돕기 기금 마련용, 10층 부사장실의 ‘지각 박스’는 소외지역 학교에 책 보내기용…. 부사장실은 이 회사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가 모두 논의되는 회의실이다. 회의에 늦은 직원은 벌금으로 5분당 1000원을 이 박스에 넣어야 한다. “임원은 분당 1000원이에요. 지각 박스 덕분에 회의에 늦고도 기분은 괜찮죠.”》

○ 분홍색 솜사탕으로 시작된 1% 기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CCMM빌딩 6층의 안철수연구소. 이 연구소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게시판에 걸린 ‘사랑의 나무’다. 큰 나무 그림에는 이름이 적힌 사과들이 열려 있다. 급여의 1%를 기부하는 운동인 ‘사랑의 1% 나누기’에 참여하는 직원 명단이다.

이 회사는 ‘아름다운재단’이 펼치는 ‘나눔으로 아름다운 일터 만들기’에 가장 먼저 참여했다.

2005년 10월, 재단은 경영진이 아니라 직원들에게 캠페인 참여를 제안했다.

쓰지 않는 물건을 기부하는 아름다운 가게 모임, 장애인을 돕던 신우회 등 이미 사내에서 활동 중이던 모임들이 나서서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직원들의 결정에 경영진은 무조건 찬성했다. 기존 모임들은 회사 조직과는 별도로 ‘나눔 위원회’를 자율적으로 만들어 사랑의 1% 나누기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8일 점심시간이 끝나 가던 오후 1시. 회사 입구에 분홍색 솜사탕을 든 직원들이 나타났다. 노인걸(QA·품질관리팀) 선임연구원이 빌려온 솜사탕 기계로 제법 둥글게 솜사탕을 만들어 냈다. 솜사탕은 공짜가 아니었다.

‘나눔 도우미’들이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동료들에게 솜사탕과 함께 쪽지를 내밀었다.

‘사랑의 1% 나누기에 동참한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날 달콤한 솜사탕 맛을 보며 1% 나누기에 동참하기로 약속한 직원은 30여 명. 1년이 지난 현재 안철수연구소 직원 350명 가운데 120명이 급여의 1%를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 팩스나 복사기 같은 나눔 박스

이 회사에서 나눔은 ‘일상’이다.

팝콘과 함께하는 나눔, 동지팥죽 나눔, 노란쪽지 접기….

회식, 체육대회 등 행사 때마다 비용의 일부를 기부하는 이벤트가 열린다.

이런 회사 분위기가 나눔을 강요하는 것 같아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재무실에 근무하는 송의진 씨는 “이전에 대기업에서 인턴사원으로 근무할 때는 회사 방침에 따라 기부를 했지만, 여기서는 직원들이 알아서 하는 행사라 강제라는 느낌이 없다”며 “하도 기부가 일상화되다 보니 나눔(기금모금) 박스들이 사무실의 팩스나 복사기처럼 여겨질 정도”라고 말했다.

나눔위원회에 참여하는 노 연구원은 “나눔은 좀 꼼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부한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확인하라는 얘기다.

이 회사 직원들은 아름다운 일터 캠페인에 참여하기 전 아름다운 재단을 방문했다. 1% 나누기로 마련한 돈을 어디에 쓸지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재단 방문 이후 직원들은 기부금의 사용처로 소외지역 책 보내기 기금을 선택했다.

왜 일터가 나눔의 마당으로 중요한 것일까.

“하루 24시간 가운데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으니까요. 일터에서의 나눔이야말로 기부를 생활의 일부로 만드는 첫걸음이죠.”(이병철 대리)

안철수연구소의 사람들은 “바이러스는 잡고 나눔은 퍼뜨린다”고 말한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기부는 일회성 행사가 아닙니다”▼

‘동정심 때문에 주로 불우이웃돕기 성금이나 구호단체를 통해 비정기적으로 1년에 10만2550원을 기부한다.’

이는 아름다운재단 부설 기부문화연구소가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 앤 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올해 8월 실시한 조사에서 드러난 ‘한국인 기부’의 표준 모델이다.

격년으로 시행하는 이 조사에서 지난해 기부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은 68.6%로 2001년 48.0%, 2003년 64.3%에 이어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인당 기부 금액은 10만2550원으로 2001년 10만9000원, 2003년 9만401원과 비슷하다. 지난해 1인당 평균 경조사비는 52만4000원으로 기부금의 5배 규모였다.

그러나 기부 동기, 기부 방법에는 큰 진전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들이 기부를 하는 곳은 재해 및 불우이웃돕기 모금이 65.0%(중복 응답)로 가장 많았고 △구호단체(45.1%) △구걸을 하는 길가의 부랑인, 노숙인(26.0%) △종교단체(13.5%) 등이 뒤를 이었다.

정기적으로 지출 계획을 세워 기부를 하는 사람은 10명 중 2명(20.4%)에 불과했다.

예종석(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기부문화연구소장은 “일상적인 기부가 ‘사회 전통’인 기독교 문화권의 미국 유럽 등과 달리 한국은 연말연시, 재난 때 기부가 집중되고 전체 기부액 중 기업의 기부가 70%를 넘는다”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