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자료 초고엔 “당 결론 따라야”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1일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통합신당=지역당’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반박하기 위해 만든 자료. 김 의장은 ‘당이 최종적인 결론을 내면 대통령께서는 수석당원으로서 그 결론에 따르면 되는 일이다’라는 원문을 ‘당이 토론을 통해 최종 결론을 내면 당원은 그 결론을 존중해야 한다’로 수정했다. 연합뉴스
“통합신당 논의는 초심으로 돌아가 참여정부를 출범시킨 모든 평화세력을 재결집하는 것이다. 이를 지역당 회귀로 규정하는 것은 모욕감을 주는 것이다.”(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
“대통령은 지역구도와 결합되는 통합신당 논의는 반대한다. 민주당과의 통합은 분명히 지역구도에 회귀하는 구도다.”(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
청와대와 김근태 의장이 1일 정면으로 맞붙었다. 양측의 갈등은 열린우리당 내 다수가 추진하는 통합신당의 성격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둘러싼 논전 양상을 띠고 있으나 이는 통합신당이 성패를 가름하는 핵심 요소여서 봉합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역당 회귀’vs‘평화세력 결집’=청와대는 김 의장 등이 추진하는 통합신당 논의가 결국은 민주당과의 통합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통합의 1차 대상이 민주당이며, 민주당과의 통합은 아무리 포장해도 ‘도로 민주당’이요, 지역적으로는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동안 김 의장은 ‘평화번영세력’의 결집, 천정배 의원은 ‘민생개혁세력’의 결집, 고건 전 국무총리는 ‘중도실용세력’의 대연합 등을 주장해 왔지만 청와대가 이를 단번에 부정해 버린 것. 노 대통령의 지적은 사실 정곡을 찌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통합신당파들이 다양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제 정파를 묶는 것이고, 핵심 관건이 민주당과의 통합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김 의장 등 지도부가 ‘신당은 지역당’이라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 격앙한 것도 핵심을 찔린 데 대한 반작용의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다.
청와대가 ‘통합신당=지역당’이라며 정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은 현재의 통합신당 구상이 명분이 없고 실익도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선의 성패는 시대정신과 명분을 누가 쥐느냐에 달려 있는 만큼 쉽게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 실장이 이날 “통합신당 문제가 열린우리당의 법적 역사적 정체성을 유지 발전시키는 과정이라면 반대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대해 통합신당파는 노 대통령이 또 다른 지역주의 함정에 빠져 있다고 반박한다. 김 의장이 이날 “지역주의 타파가 유일한 과제는 아니다”며 “노 대통령의 지난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안으로 열린우리당 지지층은 와해되었고, 국민은 모욕감을 느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결별 절차만 남았다”=현재의 양상은 노 대통령과 통합신당파가 이미 결별을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긴박하다.
김 의장은 “당이 나갈 길은 당이 정할 것이다. 당이 토론을 통해 최종 결론을 내면 당원은 결론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평당원이며 당의 진로 문제에 대한 결정권이 없다는 점을 상기시킨 것이다.
이에 노 대통령의 386 참모 출신인 이광재 의원은 이에 “당내 최장수 당의장 중 한 사람으로서 당의 미래에 대한 전권을 갖고 있었음에도 지지도를 반 토막 내버렸다. 당의 무기력한 상황을 개선하기는커녕 당이 어디로 갈지 아무런 지향점과 노선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며 김 의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정치권에선 △통합신당파가 친노(親盧·친 노무현 대통령) 세력을 밀어내는 방안 △통합신당파가 집단 탈당해 새판 짜기에 나서는 방안 △내년 2월 전당대회에서 당의 진로를 놓고 대립하는 방안 등 다양한 결별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노 대통령이 탈당을 거부하는 한 통합신당파가 친노 세력을 몰아내는 방안은 현실성이 거의 없다. 통합신당파가 집단 탈당하는 방안도 명분 확보와 구심점 문제, 창당 비용 문제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김 의장 등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원 13명이 이날 저녁 시내 한 음식점에서 만나 이병완 비서실장의 발언이 부적절했다고 비판하면서도 당분간은 내년 예산안 처리 등에 협조하면서 냉각기를 갖기로 한 것도 여당 통합신당파의 현실적 고민과 무관치 않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 중진들은 2일 노 대통령과 오찬 회동을 하며 당청 갈등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취소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