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들이 나서서 ‘인문학 선언’을 하고 각 언론이 ‘인문학의 위기’를 진단하는 특집을 잇달아 보도한 지 두 달 남짓. 최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는 인문사회 분야 연구지원금을 1000억 원 증액한 예산안을 의결했다. 학문 분야별로 연구비를 균형 있게 지원하고 인문학의 기반을 보강하기 위한 취지라고 한다. 이 안대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통과한다면 2002년부터 약 1200억 원 수준에서 정체돼 있던 이 분야의 지원금이 한꺼번에 80%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그런데 정작 인문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런 관심과 지원을 고마워하는 분위기만은 아니다. 인문학이 꼭 국가에 손을 벌려야만 생존할 수 있는 학문이냐는 비아냥거림이 있는가 하면, 요즘처럼 인문학 분야에 재정적, 인적 자원이 풍부한 적이 있었느냐며 과욕을 부리지 말라는 경계의 목소리도 있다. 프로젝트 중심의 연구 지원, 연구성과에 대한 계량적 평가 등으로 인해 정부의 재정 지원이 인문학의 연구 풍토를 망치고 있다는 주장도 거세다. 여기에 1000억 원을 더 준다니 정작 연구는 뒷전이고 잿밥 싸움만 더 거칠어질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사실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혼자 하는 학문이다. 자유롭게 연구에 몰두하기 위해 현직 전임교수에게 절실한 것은 연구에 전념할 시간의 확보이고, 비전임 연구자에게 필요한 것은 생계 보장이다. 하지만 아무리 인문학의 현실이 열악하다 해도, 인문학의 길을 스스로 택한 이들은 그 학문의 가치와 보람을 아는 한 외롭게 연구를 계속할 것이다.
그런데 인문학에도 결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그것은 학문의 재생산 구조를 구축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면의 작업이 필요하다. 하나는 각 분야의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활용하기 편리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요즘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된 ‘조선왕조실록’처럼, 연구에 필요한 기본 자료와 연구성과들을 분류·정리·번역·주석하여 해당 분야의 전문가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전문가나 비전문가까지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이런 기반이 탄탄히 갖춰져야만 인문학은 연구자 개인의 시공간적 한계와 제한된 역량을 넘어 끊임없이 새로운 성과를 재생산할 수 있다.
또 하나는 기성 학자들과 후속 세대가 함께 연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일이다. 광복 후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학문은 식민지 상황을 못 벗어나고 있다. 대학교수들은 자신들이 길러낸 박사보다 외국 대학 출신 박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자기 제자에게 연구 여건이 더 나은 곳에서 공부하라며 유학을 권유하는 상황은 식민지시대와 다를 게 없다. 아무리 세계 일류대학 박사 출신의 교수라 해도 재능 있는 학생들의 도전의식과 열정이 없는 학문 풍토에서는 곧 노쇠해 버리기 마련이니 학문 식민지의 악순환은 계속된다. 게다가 그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인문학 연구에서 후속 세대의 자체 재생산 구조 구축 없이는 온전한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학문 재생산 구조 구축은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수백 년 전에 지어진 건물들이 보존된 거리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를 만들어 가며 살아가는 프랑스 파리의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건물과 거리를 보며 자라나는 아이들과 서울의 시멘트 건물들 사이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그 출발점이 너무도 다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학문의 재생산 구조가 충실히 갖춰진 기반 위에서 인문학을 한다는 것과 황량한 벌판에서 고군분투하며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그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
김형찬 고려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