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업무차 아프리카에 온 김 과장. 일 때문이라지만 집에 혼자 있을 아내가 마음에 걸려 큰맘 먹고 다이아몬드 반지를 한 개 샀다.
김 과장은 깜짝 선물에 기뻐할 아내를 생각하며 반지가 담긴 조그만 상자를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승무원이 “기내가 건조하니 물을 자주 마시는 게 좋아요”라며 생수 한 병을 줬지만 손도 대지 않았다. ‘그깟 물이 대수인가. 주머니에는 비싼 다이아몬드가 있는데….’
이런 생각에 혼자 흐뭇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더니 기내는 곧 비명으로 뒤덮였다.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음을 알고 그만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린 김 과장은 주위를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이상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한 결과 그들은 자신을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었다.
김 과장은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었다.
‘생명의 은인인데, 다이아몬드쯤이야. 아내도 이해해 주겠지….’
목숨을 구해 준 대가로 소중히 간직하던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기로 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부족의 추장인 듯한 사람은 다이아몬드를 보더니 싱긋 웃으며 자신의 목에 두른 목걸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럴 수가!’
추장의 목걸이에는 크고 작은 다이아몬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가만히 보니 추장뿐만이 아니었다. 주위 사람들이 비슷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고 있는 게 아닌가.
추장은 “다이아몬드는 필요 없으니 혹시 물이 있으면 좀 달라”고 했다.
그곳에서는 몇 년째 비가 거의 오지 않아 먹을 물이 귀했다.
김 과장은 생수가 퍼뜩 떠올랐다.
‘생수 병을 주머니에 넣어 둘 걸….’
물을 너무 우습게 생각한 자신을 책망했다. 동시에 이런 의문을 던져 봤다.
‘생명에 소중한 물이 다이아몬드에 비해 턱없이 싼 이유는 뭘까?’
●이해
물과 다이아몬드.
둘 가운데 생명을 유지하는 데 물이 더 소중하다는 것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물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다이아몬드는 없더라도 그만이다.
생활에 꼭 필요하지 않은 다이아몬드가 물보다 비싼 건 잘못이 아닐까.
이 의문은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랜 역사를 지녔다. ‘다이아몬드와 물의 역설’이다.
이 역설은 훗날 ‘한계효용’의 개념으로 해결됐다.
골치 아픈 경제 용어가 나왔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한계효용이란 우리가 어떤 재화를 소비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얻는 ‘추가 만족’을 뜻한다.
우리는 추가 만족을 얻기 위해 돈을 내고 물건을 산다.
물이 싼 것은 물에서 얻는 추가 만족이 매우 작다는 의미다. 반면 다이아몬드는 추가 만족이 매우 크고, 그래서 많은 돈을 기꺼이 낸다.
물건 값은 소중함이나 기능에 대한 대가가 아니다. 물건을 쓸 때 얻는 추가 만족의 대가일 뿐이다.
하지만 이 설명만으로는 다이아몬드와 물의 역설이 완전히 해결된 것 같지는 않다.
왜 물에서 얻는 추가 만족은 작고, 다이아몬드는 큰 걸까.
소비가 늘어날수록 한계효용이 감소(한계효용체감의 법칙)하기 때문이다. 즐거운 휴가도 첫날이 제일 짜릿한 것과 마찬가지다.
물이 흔한 곳에서는 물의 한계효용이 계속 줄어 거의 ‘제로(0)’에 가깝다. 반면 매장량이 적은 다이아몬드는 한계효용이 크고 값도 비싸다.
이처럼 물건에 따라 한계효용이 다른 이유는 희소성의 차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물보다 석유가 비싸지만, 석유가 풍부하고 물이 귀한 중동에서는 석유보다 물이 더 비싸다.
‘한계’라는 경제 개념은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활용된다.
친구와 들른 한 음식점의 일반 정식은 2만 원, ‘게 요리’가 추가된 특정식은 3만 원이라고 치자.
누구나 게를 먹는 데서 오는 추가 만족(한계효용)이 1만 원보다 작다면 일반 정식을, 1만 원과 같거나 더 크다면 특정식을 선택할 것이다.
합리적 의사 결정은 한계효용과 한계비용을 비교해 이뤄진다는 경제원리는 일상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진수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경제학 박사
정리=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