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공동선언' 이후 최대 규모의 간첩사건이라고 밝혔지만 일심회 총책인 장민호(44) 씨는 과거 간첩 사건의 총책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장 씨는 간첩 혐의자들이 대개 해외에서 포섭되듯, 1987년 미국에서 미주신문 기자로 일할 때 재미교포 김형성(가명)으로부터 '주체사상선집' 등 북한 원전을 빌려 읽으면서 포섭됐다.
그러나 장 씨는 1993년 1월 미국 국적을 취득한 미국 시민권자다. 북한과 가까웠던 제3국 신분으로 위장한 간첩은 간혹 있었지만 미국 국적으로 신분을 세탁한 간첩은 그동안 흔치 않았다.
미국 유학파로 국내 대기업과 미국 실리콘밸리 등에서 근무한 탓인지 그의 언행은 자유분방했다. 북한에서 받은 공작금 미화 1만6500 달러와 1900만 원은 대부분 카지노에서 탕진한 것으로 밝혀졌다.
장 씨는 조사과정에서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가 변하면 안 되고, 남한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장 씨는 또 최첨단 정보통신 장비를 잘 이용했다. 해외에 서버를 둔 e메일을 이용해 북측에 보고했고, 문건을 저장할 때 플로피디스크와 휴대용 저장장치인 USB를 활용했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면모는 간첩으로 활동하기엔 치명적인 단점이 됐다.
통상 간첩혐의자들이 흔적을 남기기 않기 위해 관련 문건을 폐기하는 것과 달리 장 씨는 1만5765건의 파일이 담긴 USB 4개를 폐기하지 않고 그대로 보관하다가 공안당국에 압수당했다. 이 때문에 공안당국에 체포된 다른 관련자들은 이 같은 장 씨의 허술한 행동을 원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초기 묵비권을 행사하던 장 씨는 압수물을 들이대자 의외로 빨리 혐의를 시인했다. 그래서 수사팀 안팎에서는 "장 씨의 당에 대한 충성도가 너무 약하다", "신세대 간첩 같다"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