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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외국인 新婦

입력 | 2006-12-09 03:02:00


‘예쁜 동남아 신부, 마음만 먹으면 가능’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초혼 재혼 장애인 가능’ ‘신용카드 환영. 100% 후불제’…. 신붓감 구하기가 힘든 농촌의 도로 그리고 논두렁에까지 국제결혼 알선업체들이 내건 현수막이 즐비하다. 어찌된 셈인지 서울 강남구 서초구의 등산로, 경기 성남시 분당이나 용인시 수지의 외곽도로 주변에도 이런 현수막이 심심찮게 걸려 있다. ‘결혼’이라는 말만 뺀다면 성매매 광고 문구로 착각할 정도다.

▷충남 홍성군으로 시집온 이주 여성과 홍성YMCA 회원들이 그제 군내에서 이런 현수막들을 수거해 낫과 가위로 찢어 폐기하는 행사를 열었다. 2년 전 한국 남성과 결혼해 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베트남 출신 홍풍(24) 씨는 “이런 플래카드를 보고서야 주위 사람들이 왜 우리를 이상한 눈초리로 차갑게 대하는지 알았다”며 ‘돈에 팔려 온 여자’로 낙인찍히고 인격과 명예가 송두리째 길바닥에 내던져지는 것 같은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며 울먹였다.

▷농촌 총각과 외국인 처녀의 결혼 과정에서 드러나는 반인권적 행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남자 한 명이 최대 40명의 여성을 한꺼번에 만나는 집단맞선, 만난 지 2∼3일 만의 결혼식, 신부 측에 건네지는 결혼지참금에다 건강증명서라는 이름으로 처녀 증명을 요구하는 일도 있다. 나라가 가난하고 집안이 못사는 까닭에 좀 더 나은 삶을 찾아 말도 안 통하는 남편 하나만 믿고 한국에 시집온 이들은 사진만 보고 하와이로 건너갔던 과거 우리네 딸들을 연상시킨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은 작년에만 3만2000명. 요즘엔 베트남 출신이 급증해서 올해 들어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 여성만도 8200여명을 헤아린다.

▷노골적인 내용의 현수막은 아무리 장삿속이라고 해도 이들의 인격과 민족적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힌다. 한국인 신붓감을 구하기 어려운 농촌 총각에 대한 모독이요,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농촌 총각의 3분의 1이 외국인과 결혼하는 세상이다. 한국에 온 신부는 한국인의 아내요, 한국 아이들의 어머니요, 본인부터가 한국인이 된다. 이들을 ‘우리’로 받아들이는 민격(民格)이 절실하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