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석산 씨
각 세대는 자신만의 숙제를 안고 산다. 미국의 2030세대에게 사회에서 내 자리 잡기, 한 사람의 몫을 하기 등은 너무 멀고 높은 목표다. 어디 미국에서만 그럴까. 그림 제공 오픈마인드
◇대한민국 50대의 힘/탁석산 지음/248쪽·9800원·랜덤하우스
◇빈털터리 세대/타마라 드라우트 지음·에밀리 문 옮김/226쪽·1만1000원·오픈마인드
《“50대여, 정신 차려라.
당신들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사회를 이끌 수 있다.” ―‘대한민국 50대의 힘’ 본문 중에서》
세대를 다룬 두 권의 책이 나란히 나왔다. 하나는 빚이 없는 한국의 50대를 다뤘고 다른 하나는 빚이 많은 미국의 2030세대(밀레니엄 세대)를 다뤘다.
올해 만 50세가 된 중견철학자 탁석산 씨가 쓴 ‘대한민국 50대의 힘’은 흔히 ‘낀 세대’라 불리는 한국의 50대야말로 네트워크 사회로 진입한 한국사회의 중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저자의 근거는 이렇다. 생물학적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추세에서 50대가 중간세대가 되고 있다. 한국의 50대는 가난과 풍요, 독재와 민주화, 국가주의와 세계화를 모두 체험해 인간에 대한 속 깊은 이해를 지녔고 말보다 실천의 힘을 지닌 세대다. 또 공동체적 삶과 개인주의적 삶의 양면을 체험한 마지막 세대인 만큼 기존의 학연·지연 공동체를 대체할 새로운 공동체 창조에 가장 열성적일 수 있다. 끝으로 50여 년간 열심히 일해 왔기 때문에 가족이나 사회에 빚이 없는 세대다.
대선에서 386세대의 전면 등장과 조기퇴직·명예퇴직으로 사회에서 밀려나는 것 같은 50대의 복권을 주창하는 셈이다. 저자는 이를 국회의원, 기업경영인, 변호사, 의사, 교수, 농부 등 10명의 50대와 심층면접을 통해 풀어놓는다.
김홍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지난 50년을 돌아볼 때 똑같은 입장료로 훨씬 드라마틱한 영화를 보고 있다는 점에서 묘한 우월감조차 느낀다”는 자부심을 털어놨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모두가 남의 눈치를 보며 살면 이 사회는 그만큼 좋은 곳이 될 것”이라며 더불어 살기의 가치를 강조한다. 유승렬 벤처솔루션스 대표는 “후배들이 나를 인정해 주는 것이 고맙고 나 자신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대견하다”며 개인적 성공을 넘어 사회적 성공의 열망을 표현했다.
저자의 정치철학이 펼쳐지는 것은 이 지점에서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이념투쟁이 한국 사회가 중앙연산장치(CPU) 사회에서 네트워크 사회로 전환하는 데 적응하지 못한 당혹스러움의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설익은 사회과학서적만 읽으면서 인간을 개조할 수 있다고 믿는 386세대가 변화하는 한국사회의 콘텐츠를 채우지 못해 자신들의 장기인 사상투쟁을 끌고 왔다는 것이다. 반면 소설을 읽으며 인간은 결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고 일중독에 빠지면서 자기훈련과 통제력, 인내를 배운 50대야말로 그 콘텐츠를 채울 역량을 갖췄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이런 50대의 이상적 역할 모델을 ‘우파적 사상과 좌파적 생활태도’로 포착한다. 즉 배부르고 등 따습게 해 주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알고 문화가 꽃핀다는 믿음을 갖고 있으면서, 생활에선 검약과 정직을 실천하는 이들이다.
‘빈털터리 세대’는 반대로 엄청난 부채를 짊어진 젊은 세대의 절망에 대한 보고서다. 대학 학자금, 내 집 장만, 아이 양육에 엄청난 빚을 짊어져야 하는 미국 젊은이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이 책은 대학졸업장 유무에 따라 평생 6억 원이란 연봉 차이가 나는 미국의 현실에서 학사 2000만 원, 석사는 5000만 원의 빚을 져야 하는 현실을 고발한다. 반면에 물가상승률을 감안했을 때 1972년 고졸평균 4200만 원이던 연금은 2002년 3000만 원으로 떨어졌다. 여기에 내 집 마련과 1인당 연간 1000만 원의 육아비 부담으로 인해 ‘결혼은 미친 짓’이 돼 버린 현실을 고발한다. 저자는 그 원인이 신경제와 세계화에 있다며 밀레니엄 세대가 적극적 정치참여를 통해 불공평한 현실을 바꿔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엄청난 입시 부담에 취업난과 카드 빚에까지 시달리는 한국 젊은이들에게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두 권의 책은 모두 세대 담론 뒤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나가 우파적이라면 다른 하나는 좌파적이다. 이미 세대혁명의 정치적 파급력을 체험한 한국사회, 2권의 책이 주는 불협화음의 이중주를 읽어내는 혜안이 필요한 계절도 멀지 않았다.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