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세상을 비추는 창(窓)이 되는 눈. 눈은 고도의 정밀기기보다 더 섬세한 장기이기도 하다. 이런 눈에도 각종 질병이 찾아와 때로는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 생긴다. 특히 당뇨병 환자에게 합병증으로 찾아오기 쉬운 눈 질환은 서서히 진행되지만 방심하면 실명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다. 실제로 당뇨병망막증으로 실명하는 사람이 일본에서만 연간 3000명에 이른다는 집계다. 한국에도 당뇨병 환자는 400만 명을 헤아린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술 기기나 수술법의 진보로 망막에 구멍이 뚫리고 벗겨지는 망막박리나 치료가 곤란하다고 여겨졌던 망막 황반부의 질병도 치료의 길이 열리고 있다.》
●당뇨가 원인인 눈 질환에서 해방
당뇨병 환자인 일본 나고야(名古屋) 시의 이누가이(犬飼·49) 씨는 지난해 6월 오른쪽 시야에 검은 것이 날아다닌다고 느꼈다. 가까운 안과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당뇨병망막증으로 눈 내부에 출혈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당뇨병망막증은 당뇨병의 3대 합병증 중 하나. 섬세한 혈관이 막히거나 필요 없는 혈관이 증식하는 등의 이유로 망막에 상처가 생기는 병이다. 증상이 진행돼 악화되면 결국 실명에 이른다. 중도 실명의 대표적인 원인 중 하나다.
초기라면 레이저로 혈관을 응고시키는 ‘레이저 광응고술’로 진행을 억제할 수 있다. 이누가이 씨도 이미 두 눈에 레이저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올해 3월 출혈로 이번에는 왼쪽 눈이 ‘거즈 몇 장으로 싸인 것 같이’ 거의 안 보이게 됐다. 안구 안쪽에 있는 ‘초자체(vitreous body·유리체)’라는 조직이 출혈 등으로 흐려진 탓이었다. 초자체란 망막에 싸인 눈의 중심부분을 채운 젤리 상태의 조직으로 앞쪽은 수정체, 옆과 뒤쪽은 모양체와 망막에 둘러싸여 있다. 안구의 형태를 유지하고 빛을 통과시켜 망막에 상을 맺게 한다.
이제 레이저 치료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담당 의사의 권유로 후지타(藤田) 보건위생대학병원을 찾았다.
이누가이 씨는 양쪽 눈을 1주일 간격을 두고 차례로 수술 받았다. 수술시간은 1시간 정도. 국소마취로 의식도 있어서 “흐려진 초자체가 제거되고 시야가 밝아지는 것을 수술 중에도 느낄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수술한 지 2주일 뒤에 퇴원했고 1개월 뒤에는 운전면허 갱신을 신청해 무사히 통과했다. 그는 수술 전에는 못하던 운전도 할 수 있게 돼 “생활이 편리해졌다”고 기뻐한다.
●초자체 수술의 대가 호리구치 박사
일본 후생성은 국민이 병원을 쉽게 선택하도록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매년 분야별로 수술 횟수가 많은 병원을 선정해 발표한다. 이 중 안과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초자체 수술을 집계대상으로 삼는다.
이 분야에서 최근 수년간 전국 1위를 놓치지 않는 곳이 아이치(愛知) 현의 후지타 보건위생대학병원이다. 지난해 시술 건수는 1097건, 관련 수술을 더하면 1500여 건에 이른다.
주임교수인 호리구치 마사유키(堀口正之·50) 박사가 조교수 한 명과 함께 수술을 담당한다.
사실 지방병원에 이렇게 많은 환자가 몰리는 이유는 호리구치 박사가 단순히 수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연구개발에도 힘 써 새로운 안과수술 기법을 개발하기 때문이다.
호리구치 박사는 2003년 양손으로 초자체 수술을 할 수 있는 신형 수술용 현미경을 만들었고 투명한 초자체 조직을 분간하기 쉽게 ‘안구 내 염색수술’ 기법도 개발했다.
지금까지 초자체 수술을 할 때는 의사가 현미경을 보면서 한 손으로는 조명을 비추고 다른 손으로 혼탁해진 초자체를 흡입하거나 변성된 막을 벗겨 왔다. 그러나 호리구치 박사가 개발한 현미경은 현미경 상부에서 빛이 나와 의사가 양손을 사용할 수 있고 조명 범위도 넓어져 좀 더 안전하게, 빨리 수술할 수 있다.
이 같은 수술을 통해 시력이 좌우 각각 0.01, 0.1에 불과했던 환자가 1년 뒤에는 0.6, 0.8까지 회복되는 등 분명한 시력 복원 효과가 나타난다. 호리구치 박사에 따르면 대개 수술을 받은 환자의 절반 이상이 확연한 시력 회복 효과를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호리구치 박사는 이 같은 초자체 수술의 성과가 모든 환자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주의를 준다. 시력 회복 정도에는 본래 질병의 정도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시기를 놓친 당뇨병망막증은 치료가 곤란한 때도 있다는 것. 다만 실명의 진행을 막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나고야=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한국인이 진료 받으려면
후지타 보건위생대학병원은 일본 중부에 위치한 아이치 현 도요아케(豊明) 시에 자리하고 있다. 나고야 역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35분가량 가야 한다. 나고야에는 한국에서 직항편도 개설돼 있으며 신칸센(新幹線)도 통과한다.
병원은 의료전문직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인 후지타 학원을 모체로 해 1973년 327개 병상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규모를 늘려 1505개 병상에 이르는 종합병원으로 성장했다. 현재는 안과를 비롯해 내과와 외과, 정신과 등 23개 과가 설치돼 있다.
일본의 중부 일대에서 하루 평균 2000명에 이르는 환자가 찾아오며 협진체제가 갖춰져 있다. 초진 환자는 자신이 다니던 병원의 소개장을 가져가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외국인도 건강보험의 도움 없이 직접 치료비 부담을 감수한다면 진료 받을 수 있다.
안과 호리구치 마사유키 박사의 진료를 받고 싶으면 반드시 한국에서 담당 의사와의 상담을 거친 뒤 박사의 e메일 주소(masayuki@fujita-hu.ac.jp)로 영어나 일본어로 e메일을 보내면 검토한 뒤 연락하겠다고 한다.
진찰 시기는 질환의 긴급 정도에 따라 조정이 가능하다. 가령 당뇨병 환자는 먼저 혈당 상태를 조절해야 하는 등 검토해야 할 사항이 많아 시간이 걸리지만 망막박리 등 긴급 수술이 필요하면 당장이라도 수술 받을 수 있다.
나고야=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